재계 혼맥지도가 바뀐다3·4세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정략결혼서 연애결혼으로 이동의사·금융계 등 고소득층과 결혼…‘그들만의 리그’ 유지
한국사회에서 재벌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들의 경영행보가 국가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원론적인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재벌은 일반인들의 생각에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벌가와 같은 공인의 사생활, 특히 가장 사적(私的)인 영역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흥미와 부러움, 질시가 공존하는 묘한 성격을 지닌다.
과거 ‘정경유착’이 심했던 시기, 국내 재벌일가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들만의 리그’로 불릴 정도로 유력 정·재·관계 집안과 결혼을 했다. 결혼도 하나의 비즈니스로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집안과의 관계형성을 통해 ‘윈-윈’하는 전략적인 모습이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은 TV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재벌의 모습을 다룰 때 심심찮게 ‘정략결혼’이 하나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세대 한국경제를 이끌어 갈 주자로 꼽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1960년대생 이후 재벌 2, 3세들의 결혼에서는 이같은 모습이 많이 퇴색했다.
대한민국 재계 지도가 바뀌고 있다. 이건희, 정몽구 등 2세 경영인들이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점점 무게중심은 자식대인 3·4세로 이동하고 있다.
2세 경영인들과 달리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해외파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고로 무장한 이들은 결혼도 윗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교사상이 뿌리깊이 내린 한국사회 정서상 집안 어른들의 권유에 따라 정·재계간 결혼도 간혹 이뤄지고 있지만 2세 경영인들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배우자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의사, 금융계 종사자 등 고소득층과의 결혼이 많아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다는 지적도 있다.
◇“멀리서 찾을 것 있나?” 동창과 결혼= 재계 3·4세들의 최근 결혼 유형을 살펴보면 동창과의 결혼사례가 늘고 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는 경기초등학교 동창인 서울대 의대 출신의 박종주 아이브성형외과 원장과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설윤석 대한전선 부회장도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석미건설 심광일 대표의 딸 현진씨와 연애 끝에 2004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동창은 아니지만 교육자 집안 출신의 김현정 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재계 인사들과 혼례가 많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례와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들은 주위의 시선이 쏠리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이에 따라 연애결혼을 하더라도 동창처럼 쉽게 연결이 될 수 있는 사이끼리 자주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비교적 보수적인 재벌가의 특성을 감안하면 자유롭고 개방적인 특성을 지닌 연예인 등과의 결혼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대선 현대BS&C 대표는 지난 2006년 KBS 아나운서 노현정과 결혼하며 화제를 낳았다.
당시 노현정 아나운서는 뉴스, 교양, 예능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KBS 대표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지만, 정 대표와의 결혼 이후 내조에 전념하고 있다.
이후 정 대표 부부는 현대가 주요 행사와 삼촌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국회의원 선거운동 시절 지원유세에만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방송종사자들과의 결혼사례는 신흥 IT재벌에게서도 나타났다. 다음을 설립한 이재웅 씨는 KBS 간판 아나운서 황현정 씨와, 한글과 컴퓨터·드림위즈를 운영한 이찬진 씨는 탤런트 김희애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룹 ‘가족’에서 진짜 ‘가족’으로= 일부 재계 3·4세들은 집안 어른들의 계획에 따라 결혼한 경우 외에도 연애를 통해 결혼한 사례도 눈에 띈다.
특히 같은 그룹 계열사 가족에서 진짜 가족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남편인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
두 사람은 삼성그룹 내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상대방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삼성가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이부진 사장이 집안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에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도 직장생활을 하던 와중에 오너의 여식과 백년가약을 맺은 경우에 속한다.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한 신 사장은 동갑내기인 정 회장의 3녀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일각에서는 오너의 딸들과 결혼한 평범한 집안 출신의 사위들을 ‘남성판 신데렐라’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경영능력을 발휘하며 해당그룹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