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까지 나서 은행 이자덤터기 적발…사전에 막지 못해 금융당국 무용론 거세
“은행 못 믿겠다. 금융당국은 더 못 믿겠다”
금융산업의 생명인 ‘신뢰’가 바닥을 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제기로 신뢰도가 추락한 금융권에 이번에는 감사원이 나섰다. 대출 이자에 갖가지 명목으로 가산금리를 붙여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은 은행권의 행태를 지적한데 이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당국의 업무태만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당국이 뒤늦게 시정조치를 한다고 하지만 CD금리 조작 의혹과 시중은행들의 일탈을 사전에 막지 못한 데 대해 응분의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24일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 부실사태부터 주식시장 불공정(주가조작 등) 거래, 최근 CD 금리담합 의혹에 이르까지 작금의 금융시장 문제에는 무엇보다 금융당국의 업무태만이 주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은행들이 이른바 ‘이자 덤터기 씌우기’ 작전으로 1조원 이상 부당이득을 취함에도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금융당국 무능론’이 국민적 비판 대상이 됐다. 감사원은 당국이 은행의 실적을 평가하는 순이자마진율(NIM) 기준을 높게 잡아 은행이 더 많이 돈을 벌도록 독려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신한은행이 지난 2008년부터 학력이 낮은 고객일수록 대출이자를 더 많이 요구한 것으로 밝혀져 총체적 감독 부실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카드회사 감독도 곳곳에서 허점이 적발됐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악명을 떨쳤던 ‘카드 돌려막기’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이다. 보험사도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변액보험 자산운용은 모두 외부에 맡기고 평균 4.7명의 소수인력만 두고서도 수수료는 높게 매겼다.
상황이 이쯤되자 금융권의 탐욕을 방관한 금융당국의 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사태가 시발점이 돼 갖가지 구설수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차기 정권에서 감독체계 개편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현체계에서는 내부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정치권과 업계로부터의 독립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같은 주장은 금융정책과 감독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현재 금융감독시스템의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시장 감시나 소비자 보호라는 핵심 기능이 산업 진흥과 건전성 감독 업무에 압도되면서 시스템 공백이 발생했고, 감독당국이 문제를 봐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눈뜬 장님으로 전락했다는 주장이다.
금융권에서도 세부내용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만들어진 금융감독체계가 구조적 한계를 가진 만큼 이번 기회에 감독체제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된 당국의 인사가 관리감독의 허술함을 초래했다”면서 “단순히 금융감독체계 개편만으로 금융산업 선진화를 이루기 어렵지만 지금과 같은 금융감독체계 개편 없이는 감독은 물론 금융산업 선진화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