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가시’ 김명민 “고생 좀 덜 할까 했는데 더 했죠”

입력 2012-07-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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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고이란 기자
배우 김명민이란 세 글자에 담긴 의미는 각별하다.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 및 연출자들에겐 신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매 출연 작품에서 배우가 아닌 캐릭터로만 기억되는 특별한 능력을 뿜어내니 어느 누가 그를 원하지 않겠나. 팬들도 마찬가지다. ‘연기 본좌’ 혹은 ‘메소드 연기 1인자’란 극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길고 긴 무명의 세월을 넘어 온 김명민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아주 약간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로 이어진 안방극장의 흥행질주에 비해 스크린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초 흥행한 ‘조선명탐정’ 정도가 있을 뿐이다. 출연작마다 명성에 걸 맞는 손에 잡히지 않은 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올해 초 개봉한 ‘페이스 메이커’의 실패는 김명민의 효용성에 의문 부호를 품게 했다. 하지만 그 의문의 유효기간은 딱 6개월이었다. 이달 초 개봉한 ‘연가시’의 흥행 질주가 무서울 정도다. 개봉 2주 만에 400만명을 가뿐히 돌파했다. 블록버스터 끝판왕으로 불리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유일한 대항마로 손꼽히고 있다.

김명민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분명 다른 ‘연가시’만의 재미를 관객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내가 맡은 재혁은 두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거창한 목적의식이 전혀 없다. 단순히 가족을 살려야 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쉴새 없이 달릴 뿐이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재혁’은 평범한 가장이다. 쉬는 날에도 회사 상사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고된 일상을 겪는다. 개봉 전 소개된 ‘영웅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우리네 아빠들의 모습 그대로다. 그 역시 “재혁이 히어로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쉬움을 준 동시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출연 결정 배경을 전했다.

김명민은 조금 겸연쩍어 했지만 이번 영화의 진짜 출연 배경은 따로 있다고 전했다. 문자 그대로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것. 평소 출연하는 영화마다 워낙 자신을 괴롭히는 스타일이라 조금은 쉬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고.

▲사진 = 고이란 기자
그는 “우선 출연 분량이 너무 적었다. 한 50% 정도 될까”라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내가 아닌 다른 배우가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역할이었다. 반대로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욕심이 났다”고 말한다. 다른 배우가 해도 될 역할인데 더 욕심이 났다니. 무슨 말일까.

김명민은 “주연 배우 하나의 동력에 의지해 가는 영화가 아니란 말이다”면서 “이런 영화라면 내가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김명민의 또 다른 모습이 충분히 녹아들 수 있게 말이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말처럼 ‘연가시’가 ‘날로 먹는 기회’였을까. 또한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을까. 영화를 보면 역시 김명민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고생 전문’ 배우란 타이틀답게 시작초반부터 주야장천 뛰어다닌다. 인파 속을 휘 집고 다니고 위험천만한 차량 액션신도 소화했다. 무엇보다 위험했던 장면은 동생으로 출연한 김동완과 함께 한 화재 장면이다.

김명민은 기성 감독은 당연하고 신인 감독에게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내비치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전적으로 현장에선 감독의 말에 따르는 배우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불만도 쏟아내지 않는다. 하지만 ‘연가시’에선 연출을 맡은 박정우 감독과 딱 한 번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화재 장면에서다.

그는 “박 감독님이나 나 두 사람 모두 화재 장면은 처음이었다”면서 “처음이다 보니깐 불의 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못 잡겠더라.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명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 속 화재 장면의 괴로워하는 모습이 진짜 괴로워서라는 것.

▲사진 = 고이란 기자
김명민은 “보통 그렇게 위험한 장면은 단 한 번에 끝을 낸다. 그런데 감독님이 욕심이 좀 지나치셨는지 연속으로 세 번을 촬영하시더라”면서 “촬영을 끝난 뒤 내가 좀 투정을 했다. 그런데 감독님도 좀 삐치신 것 같더라. 나중에 술자리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풀었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렇게 위험하면서도 고생스럽게 찍은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를 물었다. 자연스러움이란다. 재난 영화란 장르적 특성을 고려한 나름의 처방이었다고 밝힌다.

그는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다. 설정이나 연기가 오버스러우면 유치하게 흘러갈 수 있다고 의견이 일치됐다”면서 “흐름에 맞게 과욕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톤을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명민의 자연스러움과 함께 영화의 빠른 편집이 더해져 ‘연가시’는 사실성이란 무기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한 대학교 교수가 언급한 “(연가시의 내용이)실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밝힌 발언이 화제를 모으면서 흥행에도 한몫하고 있다.

▲사진 = 고이란 기자
그는 “올해 여름 계곡에 사람들 발길이 뚝 끊기면 우리 영화가 성공했단 소린데, 그럼 그곳 분들은 어려워지니 난감하다”면서 “그래도 한 400만은 넘겼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기자분께 술 한 잔 쏘겠다”며 넉살을 피운다.

함께 출연한 김동완이나 문정희가 김명민의 출연 사실에 시나리오도 안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공언한 내용을 물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부터 쳤다. 하지만 이미 후배들에게 ‘김명민’이란 이름 석 자는 남다른 의미다. 지금의 ‘이순재’나 ‘안성기’에 버금가는 존재다.

김명민은 “이순재 선생님이나 안성기 선배님 같은 분들을 봐라. 인격적이나 배우로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분들이다”면서 “그런 분들의 노력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난 배우를 오래할 생각은 없다. 난 그분들과 비교 자체가 안 되는 하찮은 배우일 뿐이다”고 잘라 말했다.

▲사진 = 고이란 기자
깜짝 놀랐다. 혹시 은퇴 선언일까. 그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아니냐”며 웃는다. 하지만 그를 보며 연기의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1인 기획사에서 후배들을 육성 중이다.

연기 잘하기로 인정받고 있는 김명민이 꼽은 배우의 조건이 궁금하다. 99%의 선천적 기질과 1%의 노력이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력파 김명민에게서 나온 의외의 대답이다.

그는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해도 배우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 하는 어떤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노력하는 것과 재능이 없이 노력만 하는 사람의 결과는 분명 틀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통해 보다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격려도 잊지 않는다.

▲사진 = 고이란 기자
혹시 노출이 심한 영화 출연은 어떨까. 김명민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도 작품 선택에선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관객들이 내 벗은 몸을 보고 납득할지가 관건이다. 아마도 심하게 욕하지 않을까”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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