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경제여건 안 좋은데 정치권선 '경제민주화' 공세
“힘들다 힘들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몰랐습니다. 경영활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 경기침체는 그렇다고 하지만 그 외의 변수는….” 국내 4대 그룹 경영기획담당 임원의 말이다.
지금 재계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유럽발 경제위기에 따른 대외경영환경이 악화됐을 뿐만 아니라 내수경기마저 침체돼 돌파구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정치권은 직접적으로 재벌개혁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외침에 여야 구분이 없다. 내용과 방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재벌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주요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랫동안 기업에 몸을 담았지만 최근처럼 다양한 요인들로 경영이 어렵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외경영환경 악화를 꼽을 수 있다.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우리나라로서는 대외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유럽발 경제위기의 여파는 당초 전망과 달리 심상치 않다. 비교적 우리나라는 유럽발 경제위기 여파로부터 일찍 벗어났다고 자평했지만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경기전망도 어둡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3%로 예상했다. 내년에는 세계경제 회복과 수출 및 내수증진으로 연간 4.3%의 전망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경제정책의 또 다른 축인 한국은행은 경기전망을 더욱 어둡게 바라봤다. 지난 13일 한은은 ‘2012년 하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3%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4월 발표한 3.5%보다 0.5%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주지할 사실은 4월에 발표한 수치도 지난해 말 전망한 2012년 경제성장률(3.7%)보다 하향 조정했다는 사실이다. 불과 1년만에 경제성장률을 두 차례나 하향조정한 것으로,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이같은 장기불황이 향후 ‘퍼펙트 스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 각종 통계를 통한 예측분석가들을 대거 영입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다른 주요기업들도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 사태를 교훈삼아 시나리오 경영을 펼치고 있다.
재계에서는 대내외 경기악화와 같은 변수는 차라리 낫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경기호황과 불황은 경영을 하다보면 늘 발생할 수 있는 변수”라며 “현재 상황에서 더 큰 변수는 주요그룹에 대한 현안이 정치쟁점화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계는 당분간 재벌지배구조 개선과 동반성장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정책, 거세진 노동계의 압력과 대립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근로자들의 두 차례에 걸친 부분파업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향후 금속노조의 총파업이 이뤄지면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여소야대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구성도 재계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환노위 내에 삼성전자나 쌍용자동차와 같은 특정기업에 대한 특별위원회 설치까지 거론되는 등 환노위가 19대 국회 재계 저격수의 첨병에 나섰기 때문이다.
또 대선정국이 임박하면서 민심획득을 위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봇물터지듯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레임덕을 최소화하기 위한 검찰, 공정위, 국세청 등 사정기관들의 칼끝은 재벌을 향해 겨눠지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학계와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이 저성장 늪에 빠졌다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경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얘기가 있지만 정치권과 대립된다면 이 해법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벌을 규제하는 것만이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경제로 나아가는 길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며 “재계와 정치권, 정부가 함께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