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골라받는 병원들
“우리는 재건수술 안 해요.”
압구정동에 있는 S성형외과에 들어가 상처를 수술하는 재건 성형에 대해 문의하자 바로 거절을 당했다. 병원을 둘러볼 새도 없이 단 7초만에 황급히 나왔다.
옆 골목 성형외과에 들어갔다. 은은한 조명, 아르누보식 인테리어, 대리석이 깔린 바닥을 지나 안내 데스크에서 상담을 하자 간호사는 미소를 띤 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재건수술만 따로 하는 병원이 있을거에요, 거기 가시면 되요”라는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위치한 성형외과 10곳을 직접 방문한 결과 5곳은 재건성형을 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진료를 거부했다. 다른 4곳은 상담을 권유했고 나머지 한 곳은 간호사끼리 귀엣말을 하더니 ‘20분 정도 기다리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성형외과, 산부인과, 안과 등 일부 병원에서 돈 되는 환자만 받는 안하무인 진료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건수술을 받고 싶다는 말에 진료를 거부하지 않은 병원들은 모두 ‘일단 의사와 상담부터 하세요’라고 말하며 의사를 만나게 했다.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의사들은 보험처리가 안 되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 언급했다. C 성형외과는 cm당(상처 지름당) 40만원을 불렀다.
H 성형외과에서는 cm 당 20만원에 프락셀 5번(회당 20만원)의 견적이 나왔다. R 성형외과에서는 레이져 시술을 권했다. 단 3회만 시술하면 상처가 거의 없어진다고 확언했다. 비용은 회당 25만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하마터먼 지갑을 열뻔했다. 견적이 적게는 120만원, 많게는 200만원까지 나왔던 터라 100만원이 안 되는 수술비에 잠시 흔들렸다.
상담이 끝날 무렵 보험처리가 가능하냐고 묻자 모든 병원이 똑같은 대본을 읽듯 “성형외과에서는 보험이 안 돼요”라고 대답했다.
F성형회과는 “상처는 피부과로 가야죠”라며 의아하게 보기도 했다. 마지막에 들른 D 성형외과는 “요즘에는 대학병원에도 좋은 의사가 있다, 거기는 보험처리가 되니 재건 수술은 대학병원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귀뜸했다.
◇분만진료는 나 몰라라 = 성형외과가 보험진료를 거부한다면 산부인과는 분만 진료를 하지 않고 여성질환에 집중하는 곳이 늘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 근처에 사는 신경은(33)씨도 집 주위에 산부인과가 없어 고생했다. 신씨는 “분만실이 있는 산부인과에 가고자 출산 1달 전부터 1시간여 차를 타고 도심으로 나갔고 출산 예정일 1달 전부터는 시댁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분만진료를 하지 않는 산부인과(심평원에 분만진료 청구를 하지 않은 병원)는 2010년 기준으로 전국 64개 지역에 달했다. 2007년 59개 지역보다 다섯 지역이 늘어났다.
산부인과 수도 점점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월 기준 1725개였던 산부인과는 2012년(1분기 기준) 1497개로 줄었다.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도 커 서울이 같은 기간 490개에서 429개로 줄은 반면 전라남도 광주는 51개에서 27개로 절반 가까이 문을 닫았다.
정부는 2010년 7월 기준으로 자연분만 수가를 25% 인상해 연간 285억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분만하는 산부인과 폐업 현상을 막지 못하고 있다.
분만실은 24시간 가동돼야 하고 아이를 받으려면 의사를 비롯해 간호사도 추가로 2명이 필요하다. 의료사고 비율도 높은데다 수가는 낮아 여성질환 전문병원으로 특화하는 추세다.
현재 레지던트 과정을 앞둔 서울 사립대의 한 의대생은 “모든 의대생이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안 되는) 산부인과를 꺼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백내장 수술 안 하는 안과의사들= 안과의사들은 단체로 돈이 안 되는 수술을 거부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안과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7월 1일부터 백내장 수술을 중단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7월 1일부터 포괄수가제를 실시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해 수술거부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냈다.
복지부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 수가는 기존 행위별 수가보다 10% 인상됐다. 반면 안과의사회는 개인병원의 경우 고가의 의료장비를 쓰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이번에 오른 수가도 원가에 못미친다는 입장이다.
한 개인병원 의사는 “백내장 수술장비가 수십억원인데 수가는 낮아 백내장 수술은 돈이 안 되고 라식·라섹으로 얻는 수익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성명서를 내고 안과의사회를 비판했지만 안과의사회는 진료 거부 입장에 변화가 없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한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면허정지 1개월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의원 또는 외래 진료실에서 예약 환자 진료 일정이 있어 타 의료기관 방문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경우’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해 사실상 진료 거부가 가능하다. 이처럼 의료기관이 돈 되는 환자만 가려받는 행태를 막으려면 진료거부를 제재할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