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의 企와 經]공정위 ‘이상한 잣대’

입력 2012-06-0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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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곤 산업부 팀장

기업은 규모가 커지고 위상이 높아지면 매출 증대와 함께 이미지 제고에 한층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경영에서 대외적인 이미지는 신뢰의 척도다. 신뢰가 깨졌을 때 기업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생산 비용 못지않게 사회적 비용으로 거액을 투자하는 이유다.

지난주 대한항공은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이 찍혀 기업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다. 몽골 정부 인사들에 대한 ‘편의제공’ 등 몽골항공과의 담합으로 경쟁사의 진입을 가로막고 몽골행 탑승자들로부터는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는 공정위 발표 때문이다.

만약 공정위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대한항공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동안의 대한항공 이미지도 가공된 광고홍보에 의해 포장된 위선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한항공을 재단하기 전에 공정위가 놓친 대한항공과 몽골의 관계 특수성을 들여다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몽골의 항공산업은 1992년 대한항공이 무상으로 기증한 B727 항공기 1대로부터 시작된다.

대한항공은 몽골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이 항공기를 양국간 경제교류를 목적으로 제공하고 조종 및 정비 기술진까지 무상 양성시켜 운영을 지원했다.

이에 몽골 정부는 대한항공의 유럽행 항공기의 몽골 영공 통과와 조중훈 당시 한진그룹 회장에게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수여하고 종마 1필을 증정하는 것으로 답했다. 공정위 잣대로라면 담합(?)의 시초인 셈이다.

이후 정기성 전세편이 취항하고 몽골 항공 객실 및 운항 승무원 교육과 매년 5명의 몽골 학생에 대한 무상 유학지원까지 대한항공이 주도한 민간외교는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는 사막화 방지를 목적으로 울란바토르 인근 지역에서 대한항공 신입사원들은 방사림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몽골 정부 관리들의 한국 방문도 잇따랐다. ‘담합을 위한 편의제공’(?)이 본격화된 것이다.

공정위의 또 다른 잣대인 부당한 운항요금도 일차원적 접근이다.

현재 대한항공의 인천-울란바토르 왕복 운임은 62만8100원.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 없이 동일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왕복거리는 2452마일로 마일당 운임은 256원이다.

울란바토르와 비슷한 거리에 있는 도시는 사할린(2090마일), 충칭(2560마일), 계림(2568마일). 경쟁항공사가 성수기와 비수기 동일 요금제를 적용하는 사할린의 왕복운임은 93만원으로 울란바토르보다 362마일이나 가깝지만 30만1900원이 더 비싸다. 마일당 운임도 445원에 달한다. 충칭과 계림도 마일당 운임이 성수기 기준으로 250원과 296원으로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 다른 도시의 운임은 도외시한 채 유독 울란바토르만 문제 삼은 것이다.

기업의 부정·부당 행위에 대해 정부 기관의 예외 없는 단속과 제재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왜곡된 잣대에 의한 무리한 단속과 제재는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낼 뿐 아니라 반기업 정서를 부추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판단이나 제재로 해당기업이 입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우리 기업의 글로벌 성장을 위해 정부 기관이 지원과 협조는 못하더라도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데 급급한 것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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