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진콜’속 금융맨 모럴헤저드
2011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마진콜(Margin call)’에서 회사의 부회장 제레미 아이언스(존 털드 역)가 회사의 부실 증권을 대부분 팔아버린 뒤 읊조린 대사다. 부실이 있던 없던 시장가격에 파는 것은 누구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실상 사기지만 당사자가 진실을 알지 못한다면 책임이 없다는 궤변이나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공정시장가격(Fair market price)’이란 허상을 지적한 것이다.
영화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를 소재로 삼은 만큼 현실에 가깝다. 실적에 매몰돼 리스크 관리를 뒷전으로 한 투자은행들, 천문학적인 연봉 탓에 ‘탐욕’이란 단어가 덧씌어진 일 등 모두 현실에서 나타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샘 로저스 역)는 동료들이 대규모 해고될 때 “하루에 수천달러씩 들인 내 개가 종양 때문에 죽어간다”며 슬퍼한다. 인간성이란 가치가 돈보다 하위 개념으로 전락한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MBS는 주택을 담보로 10년 이상의 장기대출 해준 주택 저당채권을 자산으로 해 발행한 증권이다. MBS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금융기관은 주택 저당채권을 자산 유동화중개회사(SPC)에 매도한다. SPC는 이를 다시 몇 개의 채권과 묶어 MBS를 발행해 금융기관에 되판다. 금융기관은 다시 MBS를 이 기관 저 기관에 돌리고 돌린다. 금융회사로서는 수십년에 걸쳐 상환받아야 하는 대출금을 일시에 받을 수 있어 자금조달에 유용하다.
그러나 이 같은 자산유동화증권(ABS) 맹점이 있었다. 결국 주택가격이 꾸준히 상승해야 이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들의 부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4 용지로 세 장에 걸친 파생금융상품 공식이 실물경기 하락에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국은 금융위기로 깨닫게 됐다.
2008년 당시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에거 근무했던 관계자는 “리먼브라더스 직원들이 하루 만에 모두 짐을 싸들고 나와 이게 현실인 것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파생상품은 손에 손을 거치고 다양한 상품이 거래돼 아직까지 정확한 거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상반기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707조6000억달러(약 83경1430조원)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 파생금융 상품이 회사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장이 활성화 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파생선물시장은 지난 1996년에 설립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파생상품시장 일평균 거래량은 1584만 계약으로 전년의 1495만 계약에 비해 6.0% 성장했다.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이 지난 2010년 일평균 21.4% 증가한 것에 비하면 성장세가 주춤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가 국회에서 논의되면서 거래가 다소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여야 양당은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을 지난 4월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반면 시장에서는 거래 비용 증가로 시장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거래 규모로 봐도 우리나라의 파생상품시장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견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아직 규모적 측면에서 파생금융상품에서 발생한 부실이 전체 금융기관에 전이될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세계적으로는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JP모건은 최근 6주 만에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에서 20억 달러(약 2조35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은 것이 계기가 됐다. CDS는 기업의 부도위험 등 ‘신용’을 사고 팔 수 있는 대표적인 신용파생상품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악몽이 끝나지 않았다.
※마진콜(Margin call): 마진콜이란 선물거래에서 최초 계약시 계약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예치한 증거금이 선물가격 하락으로 거래개시 수준 이하로 가격이 내렸을 경우 증거금을 올리라는 요구를 받는 것을 뜻한다.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전화(call)를 받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투자자가 증거금 인상 요구를 무시할 경우 증거금으로 맡겨진 주식이 대거 매물로 나와 주가는 하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