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레버리징은 금융시장 뿐 아니라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경제 호황기에 은행이 대출을 늘이면 기업투자가 확장되고 고용이 늘어나는 것을 레버리지 효과라 한다.
반면에 경제 침체기에 은행이 대출을 줄이거나 기존의 대출을 거둬들임으로써 경제가 더 빠르게 나빠지는 것을 디레버리지 효과라 불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잘못된 주택소유 정책 때문에 주택가격 버블이 터지고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융자은행이 도산을 했다.
이어 2008년 투자은행과 대형 보험회사가 줄도산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은행들이 BIS 권고사항인 자기자본비율 8%를 지키기 위해 대출을 급격히 줄였다.
결과적으로 금융기관의 자본건전성은 다소 개선됐다.
그러나 거시경제는 크게 탄력을 잃게 되었으며 실업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였다.
금융기관이 대출자금을 회수함으로써 기업은 투자마인드를 상실하게 됐다.
가계는 소비지출을 급격히 줄임으로써 경제는 디레버리징에 의한 경기침체의 구조적인 악순환을 맞게 됐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량실업을 가져오는 실물경제 침체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달러를 무한정 살포하는 양적 완화정책을 선제적으로 실시했다.
미국은 금도 거의 제로 예금금리를 유지할 수 있게 충분한 달러를 공급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달러공급 정책은 불원간에 높은 인플레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경제 석학들과 금융전문가들은 실업문제를 어느 정도 먼저 해결하고 인플레 문제는 조금 있다가 해결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달러는 세계통화이기 때문에 미 달러에 대한 해외수요가 어느 정도 받쳐주는 한, 달러 인플레는 당분간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달러를 계속적으로 공급할 뿐 아니라 감세와 정부지출을 통한 확대재정정책을 유감없이 집행하고 있는 이유다.
이 덕분에 미국은 이제 고용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GDP 성장률이 조금씩이나마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 등장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버냉키 연준 의장은 얼굴에 희색을 띄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의 17개 유로존 국가들, 특히 GIIPS 5국이 속해 있는 남유럽은 국가부도의 위험과 고실업률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상황이 대내외적으로 좋을 때 유로존 회원국들은 역내 통합된 금융시장에서의 고효율성과 통화가치의 안정성이라는 이점을 한껏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디레버리징 충격을 받는 동안에는 유럽중앙은행은 미국처럼 즉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유럽은 하나의 공동통화를 쓰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률과 인플레 문제는 회원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인플레와 실업률간의 상관관계에 다르게 반응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유로존에서는 단일 통화를 쓰고 있기 때문에 경제안정화를 위하여 쓸 수 있는 금융정책이나 환율정책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재정정책만 존재하는데 프랑스와 독일을 제외한 유로존 국가들은 가난해서 정부지출을 행사할 여력은 처음부터 부족했다.
오히려 과거에 발행한 국채가 만기가 되어 돌아오고 있지만 국채를 떠안을 여력이 없다.
다른 회원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정부가 부도를 내야하는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IMF와 동료 회원국들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정부의 지출억제·기업부채 축소·가계소비 감축 등을 요구하고 있어서 이들의 앞날은 참으로 암울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이들은 적어도 앞으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마이너스 GDP 성장률과 실업률 상승은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유로존 회원국들은 모두 같은 운명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회원국들이 지금 가장 힘들어 하는 그리스, 스페인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오늘의 경제문제가 그동안 관련 정부의 흥청망청한 재정지출 때문이었다고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허리띠만 졸라매라고 강요하지 말고 생산과 고용창출로 이어지는 재정지출을 위해 새로운 자금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빠르게 집행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대책이 될 것이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