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의 企와 經]태양광‘매몰비용의 함정’

입력 2012-04-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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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곤 산업부 팀장

태양광 사업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중행보가 뚜렷하다. 장치산업이라는 사업의 특성상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태양광은 단기성과를 기대할 수 없고, 최근엔 업황부진까지 겹쳐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 투자확대와 사업철수를 두고 진출기업들이 전혀 다른 양극의 길을 걷고 있다.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기업은 한화케미칼과 삼성정밀화학이 대표적이다. 한화케미칼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이 나서 실무를 챙기고 있을 만큼 적극적이다.

반면 대부분의 진출기업들은 투자를 중단한 채 눈치를 보고 있다. 최근 초라한 1분기 성적표를 내놓은 OCI를 비롯해 지난 4분기 큰폭의 적자를 봤던 KCC와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웅진그룹 그리고 투자 집행을 연기한 LG그룹 등이다.

그러나 투자를 확대했든, 연기했든 태양광 사업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 모두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매 한가지다.

특이한 점은 이들 기업 가운데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사업철수를 선언한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투자를 중단한 기업조차 경기 상황에 따라 생산과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이쯤에서 ‘매몰비용의 함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몰비용의 함정은 행동경제학에 등장하는 용어로 현재의 손해보다 더 큰 손해를 부르는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양식을 꼬집고 있다.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나 시간, 비용이 그 원인이다. 바로 본전생각이다.

웅진그룹의 예를 보자. 웅진그룹은 지난 2월까지 7200억원을 투자하며 태양광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올들어 유동성에 빠졌고 급기야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기업인 웅진코웨이를 매물로 내놓았다.

그룹재무를 담당했던 한 퇴직 최고위 임원은 “태양광 사업의 미래가치와 막대한 기존 투자자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룹의 유동성 위기까지 불러왔다”면서 “과감한 사업철수만이 그룹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마치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도박판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태양광 진출 기업들 역시 투자 원금에 대한 미련이 사업철수 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굳이 아담 스미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익을 얻을 기회는 조금이라도 과대평가하고 손실을 볼 기회는 조금이라도 과소평가한다. 이익에 관해서는 리스크 회피적이지만 손실에 관해서는 리스크 추구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태양광이 미래에 기업을 먹여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리스크를 추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의 태양광 사업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이 과잉투자로 인한 공급과잉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경기회복을 기다리거나 증설한다고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폴리실리콘 업계 2위인 OCI만 글로벌 Top 10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국내 태양광 기업 대부분은 기술력과 경쟁력 측면에서 최하위권 수준이다.

사업은 시작보다 중단을 결정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진리가 국내 태양광 기업들의 어려움을 보며 새삼 피부에 깊게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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