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노키아, 소니 그리고 삼성

입력 2012-04-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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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산업부장

세계 1위의 휴대전화 회사였던 노키아가 몰락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대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판매 부진으로 실적은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급기야 신용등급은 투기등급 직전까지 떨어졌다. 핀란드의 자존심이 무참히 구겨져 버렸다.

가전왕국으로 불렸던 소니의 추락세도 심각하다. 4년 연속 적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소니는 1만명에 달하는 직원을 감원한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전체 인력 16만8200명의 6%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 감축이다. 소니는 지난 2008년에도 1만6000명을 해고했지만, 실적 악화를 막지 못했다. 소니의 대표 제품인 TV 부문 실적 부진 탓이다. 일본의 자존심은 핀란드보다 더 처참하게 망가졌다.

노키아와 소니의 몰락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그렇다면 삼성은 영원할 것인가? 물론 아닐 것이다.

삼성은 지금까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서 탁월한 역량을 보이며 글로벌 탑의 수준에 올랐으나 이제부터가 문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경험이 없는 데다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미국이 쥐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휴대폰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 삼성전자는 주춤했다. 그러나 곧바로 추격에 나섰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을 추월했다. 올해 1분기 글로벌 휴대폰 시장 1위 자리는 덤이었다.스마트폰의 판매 호조로 매출 45조원, 영업이익 5조8000억원이라는 놀라운 1분기 잠정 실적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노키아와 소니 처럼 패스트 팔로워일 뿐이다. 아직 애플의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는 갤럭시 노트에서 퍼스트 무버로서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그렉 자카리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교수는 얼마전 한 칼럼에서 세계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성공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이 ‘응용과학’에는 강한 대신 ‘순수과학’이 취약한 점을 들어 “미래의 성공을 현재에 저당 잡혀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한국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과 한국에 창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애플이 차원을 달리한 제품을 내놓으며 IT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듯, 삼성도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했던 패스트 팔로우 전략으로 우리를 추격하는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또 하나 삼성이 간과해선 안되는 것은 미국의 영향력이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GM 포드 등 미국 빅 3 자동차회사들이 쇠퇴하면서 한때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부상하는 듯 했으나, 예상치 못한 리콜 사태로 급전직하했다. 지금은 리콜 충격에서 많이 회복된 듯 보이지만, 예전의 성가를 되찾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기술적인 결함 보다는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린 데 대한 미국 사회의 보복의 성격도 있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에는 미국 정부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이런 이유로 애플이 삼성에 의해 큰 타격을 받을 경우 삼성에게도 도요타와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삼성이 애플과의 특허전을 양보하거나, 시장경쟁에서 전력을 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삼성은 퍼스트 무버로 재탄생해야 한다. 미국과 시장의 질시를 받아서도 안된다. 그에 맞는 새로운 도덕적 기준도 필요하다.

핀란드와 일본 국민들이 노키아와 소니에 자부심을 가졌듯, 우리 국민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하는 삼성전자를 보고 무한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삼성이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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