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앙은행의 비밀] 日은행…2000년 ‘잃어버린 10년’탈출 위해 유동성 공급

입력 2012-04-1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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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의 지배자, 일본은행 왕조, 은행의 은행…’

일본 경제와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중앙은행 ‘일본은행(BANK OF JAPAN, 일본명 닛폰긴코)’에 따라붙는 꼬리표다.

1882년 6월 출범한 이래 130년에 걸친 일본은행의 역사는 이른바 ‘전쟁의 역사’로 요약된다.

일본은행은 때로는 물가와, 때로는 통화와, 때로는 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가장 길고 치열했던 전쟁은 불황과의 전쟁이다.

일본은행은 정부의 재정 정책과 보조를 맞추며 불황 탈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출범 초기 현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일본명 오쿠라쇼)의 감독을 받으며 금융정책을 실행하던 것이 전부인 시절도 있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때 생긴 대장성은 국정 운영을 위한 자금조달 기관으로서 실질적인 재정정책을 결정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 불황과 함께 대장성의 권위가 추락했고,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성역없는 개혁 하에 성청이 개편되면서 대장성은 재무성과 금융청으로 분할됐다.

일본은행은 앞서 1998년 4월 개정된 일본은행법에 근거해 독립성을 확보했지만 대장성이 해체되고서야 유명무실했던 독립성을 비로소 거머쥘 수 있었다.

그 때부터 금리 정책과 공개시장조작 등 모든 중앙은행의 정책을 총재와 2명의 부총재, 6명의 심의위원으로 구성된 정책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 호황기에 자산 시장의 거품이 과열, 1990년대 초반부터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컬어지는 장기 불황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장성은 침체된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1992~1994년 네 차례에 걸쳐 45조엔 규모의 부양책을 시행하고 이것도 모자라 60조엔을 더 풀었다.

그럼에도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경기 부양책의 재원을 모두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 시중에서 자금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디플레이션까지 겹쳐 일본 경제는 이중으로 타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일본은행은 2000년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2001년에는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했다.

통화 정책을 금리가 아닌, 중앙은행이 시중에 푸는 자금 규모로 조절한 것으로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진통 끝에 일본은 5년 만에 디플레이션에서 탈출, 일본은행은 2006년 양적완화 방침을 철회하고 금리를 0.25%로 올리면서 제로금리 시대에도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와 함께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진입, 일본은행의 불황과의 전쟁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008년 3분기 시점에서 0.5%였던 기준금리는 같은해 말 0~0.1%로 낮아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년 간은 엔고까지 일본 경제를 압박,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에는 외국 중앙은행과 공조해 환율 개입을 단행했다.

현재 엔화 가치는 지난 2월 일본은행이 실시한 추가 완화 조치에 힘입어 82엔대로 하락했지만 해외발 리스크 때문에 불시에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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