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甲乙상생의 기업문화를 꽃피워야

입력 2012-04-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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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에이펙스 상임고문

유무상생(有無相生)! 이는 노자의 도덕경 제2장에 나오는 말이다. 직역하면 “유와 무가 서로 낳는다. 즉, 유가 무를 낳고 무가 유를 낳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生은 타동사로서 살린다는 뜻도 있으므로 “유가 무를 살리고 무가 유를 살린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우리 시장에는 힘 있는 갑(유)과 갑 앞에서 사족을 못 쓰는 힘없는 을(무)이 도처에 병존하고 있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대형 유통업자와 납품 입점업체, 가맹본부와 가맹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갑과 을의 관계이다.

하바드 대학의 세계적인 경영석학인 이안시티(Marco Iansiti)교수는 “오늘날 기업 간의 경쟁은 대기업과 그 중소협력업체로 이루어지는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이다”라고 하였다. 예컨대 현대차와 도요타와의 경쟁은 현대차와 수많은 부품제조협력업체로 이루어지는 현대차 생태계와 도요타와 그 부품업체로 이루어지는 도요타 생태계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지극히 적절하고도 타당한 지적이다.

일전에 도요타가 제동장치의 결함으로 인해 리콜을 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그 잘나가던 도요타가 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는데, 이는 협력업체의 경쟁력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수만 개 부품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자동차에 있어서 어느 한 부품에 결함이 생긴다면 이는 곧 자동차 전체의 결함으로 나타난다.

세계 초일류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자사 규모에 비해 100배 이상이나 큰 기업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생태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발전하도록 지원하는 데만 매년 약 1조500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고 한다.

노자의 유무상생과 이안시티 교수의 기업생태계는 힘 있는 대기업(유)이 힘없는 중소기업(무)을 살리고 힘없는 중소기업(무)이 힘 있는 대기업(유)을 살린다는 뜻으로 결국 같은 말이다.

대기업이 잘되면 그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은 따라서 잘될 것이라는 대전제 하에 내세웠던 MB정부의 비즈니스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때문에 참여정부에서부터 공정위가 추진해 왔던 대·중소기업 상생협약정책이 하마터면 이 정부 출범과 더불어 소멸될 뻔 했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정부가 집권중반에 들어서면서 백팔십도 방향전환을 하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정책을 범정부차원에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라는 명칭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생협력은 이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필수요소가 되고 있는 만큼 뒤늦게나마 잘못된 정책궤도를 바로 잡은 현 정부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추진에 따라 지난 몇년 동안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들과 공정거래법준수와 상생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하도급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하고 있고 이러한 분위기는 대형 유통업체와 입점 납품업체 간에도 확산되고 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동반성장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기업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시켜서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오너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협력업체를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는 상생한다면서 뒤에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다거나, 위에서는 상생한다고 하는데 아래에서는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대기업은 이제부터 중소기업을 협력업체라고 부르는 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협력은 상호 간에 하는 것이지 중소기업만 대기업에 협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생협력하라고 하자 경제단체가 용어를 동반성장으로 바꾸자고 했다. 대기업은 그동안 중소기업을 협력업체라고 불러왔는데 서로 협력하라고 하니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협력할 마음만 있다면 상생협력이면 어떻고 동반성장이면 어떤가? 그러나 동반성장이라는 용어에는 결과만 있고 그 과정인 방법이 없다. 과정을 의미하는 상생협력을 하지 않고 어떻게 동반성장이 가능하겠는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에도 갑과 을이 서로 상생하는 갑을상생의 기업문화가 활짝 꽃피는 봄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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