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금융수장]금융당국도 권력 앞에선 무력

입력 2012-04-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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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銀 대형화·상호금융 비과세예금…정치권 압력에 원칙 흔들

▲저축은행 부실 사태는 금융당국이 정치권의 압력에 인위적으로 대형화를 유도했던 정책이 화근이 됐다는 지적이다.(사진=노진환 기자)
금융시장의 룰을 만들고 반칙 행위를 엄벌하는 금융당국도 권력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시장에서 금융당국 그 자체가 권력기관이지만 청와대, 국회 등 더 높은 권력기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금융감독 실패 사례로 꼽히는 저축은행 사태도 금융당국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저축은행 대형화를 불러온 정책으로 손꼽히는 저축은행간 인수·합병 허용 정책이 그렇다.

부실 저축은행이 나타나면 영업정지 대신 다른 대형 저축은행에게 부실을 인수케 한 것이다. 피해자를 발생시키지 않고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한 대형 저축은행의 CEO는 청와대에 몇 차례 불려가 저축은행 인수를 강요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4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부산저축은행도 정작 자신들이 인수하고 싶어 인수한 곳은 구 전주저축은행 한 곳뿐이었고 나머지는 정부 당국의 강권에 못 이겨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 계기도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처음 이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으로 외환위기 이후 부실 상호신용금고가 잇따라 도산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정현준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2000년대 초반 벌어진 각종 비리 사건에 동방상호신용금고, 열린상호신용금고 등 상호신용금고가 잇따라 연루된 사실이 적발된 게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농·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에 적용되고 있는 비과세 예금을 보면 금융당국이 정부와 국회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 수 있다. 처음 상호금융의 비과세 예금을 폐지키로 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이후 비과세 허용은 3년씩 총 세 차례나 연장됐다. 오히려 지난 2009년에는 비과세 한도가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말 비과세 예금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금융권에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융정책이 확 바뀐 사례도 여럿이다. 특히 금리나 카드 수수료 등 시장가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0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캐피탈사로부터 35%에 대출을 받았다는 상인의 말을 듣고 “사채 이자 아니냐. 일수이자보다 비싸다”라며 “대기업이 하는 캐피탈이 이렇게 이자를 받는 것은 사회정의상으로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전면적인 캐피탈사 대출금리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대출금리를 낮추면 서민대출 공급이 줄어든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캐피탈사들을 압박해 신용대출 금리를 20%선으로 인하했다.

카드 수수료에 관한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다. 지난 2009년 말 금융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재래시장의 카드 수수료가 백화점보다 낮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두 차례의 카드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들은 재래시장 내 가맹점에 백화점 수준의 수수료율을 부과하고 있었다.

결국 이듬해 3월 금융당국은 재래시장 내 가맹점과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0.3~0.4%포인트 내렸다. 2008년 초와 2009년 초 두 차례에 걸쳐 수수료를 인하했지만 불과 1년 만에 또 수수료를 인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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