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납세는 국민 의무…종교단체 회계 투명성 선행돼야

입력 2012-03-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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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도 과세 입장 동감, 가톨릭선 이미 소득세 납부…일부선 "'스쿠크법' 관철 카드"

종교인에 대한 과세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거를 앞두고 종교계와 마찰을 빚을 걸 뻔히 알면서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원칙적으로 과세가 돼야 한다”며 불을 지핀 것이다. 박 장관의 말이 모든 언론에 보도되자 마자 기획재정부 는 “국민이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 뿐이라면서 적용방법이나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며 공식 해명자료를 내놨다. 총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종교인들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정계와 행정 일선에서 수년간 몸담아 온 노련한 박 장관이 총선을 앞두고 아무 생각도 없이 민감한 카드를 꺼내 들었을 리가 만무하다. 문제는 쉽게 풀렸다. 얼마 전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박 장관의 이번 발언이 아마 작정하고 뱉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그는 “성직자들에게 과세해봐야 세수가 200억원도 채 안되는데 그게 정부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면서 “이번 발언을 통해 종교인 과세에 대한 당위성이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나면 자연스레 거대 종교단체의 회계 투명성 논의로 이어지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슬람권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박 장관이 지난해 무산됐던 ‘수쿠크법’의 관철을 위해 기독교계와의 협상용 카드라는 시각도 있긴 하다.

◇종교단체, 박장관 발언 일단 공감 =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 발언에 대해 종교계는 예전처럼 크게 반발하지는 않고 있다. 종전에는 종교인 과세에 대해 신성모독이나 종교탄압이라며 반발하는 일이 흔했다. 다만 미자립 교회나 지역 본말사가 대다수인 현 상황을 감안한 과세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평가다.

지난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목사들이 자발적인 소득세 납부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계 입장을 대변해 온 교회언론회는 최근 “납세는 국민의 의무를 통해 국가에 도움을 주는 행위이며, 국가를 위해 늘 염려하고 기도하는 성직자들이 굳이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논평을 냈다.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 측도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문제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3대 종교 가운데 하나인 가톨릭은 이미 주교회의 결정으로 1994년부터 소득세를 내고 있다. 성당 역시 법인 소속으로 종교단체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고 있어 이번 과세 논의에서는 빗겨나 있다. 또 일부 기독교·불교 성직자들 역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그러나 미자립 개별 교회가 대다수이고 스님 대부분이 면세점 이하의 소득 수준에 불과해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실제로 가톨릭 신부·수녀들의 경우 월급이 대부분 면세점 이하여서 내는 세금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종교인에게 소득에 대한 것을 반드시 세금으로 부과해야 한다면 종교인과 근로자를 동일시해 ‘근로소득세’로 하지 말고, 성직자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새로운 과세 과목을 만들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인 과세문제는 시간적 유예를 갖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종교인이 낸 세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같은 종교인들을 돕도록 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성직자 세금은 빙산의 일각…“매머드급 교단 회계 투명성 선행돼야” =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한 논란은 이미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낼 정도로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다. 보수적인 한국교회언론회 조차 이번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며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종교단체의 회계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세금 과세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고 있으면서도 많은 세제혜택을 받고 있고, 회계가 투명하지 않아 과세 또한 쉽지 않다는 게 이유다.

한국 종교계는 거대 기업을 방불케 한다. 교회와 성당, 사찰 등 종교시설이 9만여개에 이르고 성직자의 수는 36만5000여명에 달한다. 공식적인 헌금 액수만 연간 6조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특히 기독교는 전세계 50대 교회 중 23개가 국내 있을 정도로 교단의 세가 막강하다. 이 안에서 도는 돈의 액수조차 파악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먼저 종교인들은 일반 직장인과 달리 ‘월급’이나 ‘급여’항목으로 돈을 받지 않는다. 개신교의 경우 기본급에 해당하는 ‘사례비’외에 활동비, 본인과 자녀 유학비, 사택 운영비, 승용차 등이 목사에게 제공되는데 그 액수가 얼마인지 알기가 어렵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경우 20여년 전부터 소속 목사의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일부 개혁적 성향의 목사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종교단체의 경우 성도들이 성직자에게 증여하는 활동비와 자녀학자금, 사택 등은 회계 장부에 기록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정확한 액수의 세금을 내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물론 교회나 사찰이 내부적으로 결산 총회 등을 통해 보고하지만 외부에 공개하거나 감사를 받은 예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단체가 회계 투명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종교법인도 외부감사를 받고 재무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영기 홍익대 교수는 최근 열린 '종교 단체의 외부 감사와 재무정보 공개' 토론회에서 “(헌금이나 시주 등) 종교단체에 대한 지정기부금을 손비 처리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종교단체의 공익 활동을 인정해서이므로, 해당 단체는 회계 보고를 통해 실제로 그런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며 “재정 투명성을 위해 외부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면세를 받는 공익단체가 주무관청에 재정과 활동 내용 보고해 감독을 받게 돼 있고, 일본도 종교법인법으로 해당 단체의 회계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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