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에이펙스 상임고문
지난 2월27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하고 3월1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제18조의 3 제3항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는 정부가 카드사가 카드가맹점으로부터 받을 카드수수료율을 정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법률조항이 정부 입법도 아니고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 그것도 정무위원회의 발의로 이뤄졌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추측컨대 영세중소상인들이 대형유통점에 비해 높은 카드수수료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자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이런 입법을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명색이 금융위원회와 더불어 경쟁법을 집행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담당하는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가 이런 입법을 하였다는 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영세중소업체를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법률을 개정하기로 한다면 어디 그 대상이 신용카드수수료에 국한하겠는가? 다음에는 유통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영세중소업체에 대한 백화점의 수수료도 공정위가 정하라고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가격이란 시장에서 사업자 간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바탕 위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가격이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며,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이다. 그런데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어떻게 시장가격인 카드수수료를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겠는가? 금융위원회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시장의 경쟁질서가 아직 확립되지 못했던 소위 개발연대에는 정부가 일부 주요 품목의 가격을 직접 통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 땅에 공정거래제도가 도입시행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고 우리의 경쟁법 집행수준은 G7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의 여전법 개정은 이런 우리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말았다.
이번에 개정된 여전법 제18조의 3 제3항은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질서에도 어긋나며 국회 스스로가 경쟁제한적인 법조항을 일방적으로 넣어 법을 개정하였으니 이는 입법권의 남용이다.
공정위가 사업자들 간의 담합은 경쟁을 제한하는 “시장경제 제1의 공적”이라고 엄단하고 있는데 금융위가 카드수수료를 정해 준다면 어느 국민이 법을 따르고 이런 정부를 신뢰하겠는가?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서 카드사가 중소가맹점에 대해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 지를 진단해서 합리적인 처방을 내어 놓아야 한다. 카드수수료가 시장원리가 아닌 거래상 지위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면 이는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면 된다.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은 사업자들 간의 경쟁규칙을 공정하게 정해주고 이를 감시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정부가 경쟁의 궁극적인 산물인 가격을 정해준다는 것은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승부를 조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도 카드수수료 문제에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할 입장이 아니다. 정부에게도 카드사용을 부추기고, 카드사를 난립시키고, 그리고 사업장에 카드수납을 강제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신용카드의 사용유도와 수납의무화를 통해 세원확보라는 이익을 챙겼다.
카드사용자인 국민은 지갑 속에 현금 대신 카드 한 장만 있으면 물건을 신용으로 구입할 수 있어서 편리했고 카드 사용실적에 따른 소득공제혜택도 받았다. 카드사들도 카드수수료에다 카드대출이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유독 카드가맹점은 세원노출로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고 카드수수료까지 지불해야 하니 득은 없고 실만 컸다.
우리 시장에서 신용카드는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직접 카드수수료율을 정할 것이 아니라 카드수수료 결정에 문제가 없는지 시장을 면밀히 살피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총선이 이제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 국회가 개원되면 여전법 제18조의3 제3항은 지체없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동훈 법무법인(유) 에이펙스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