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펀더멘털 개혁 없는 정부 주도의 탁상공론 비난
일본 열도가 ‘소비세율 10% 시대’에 몸서리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오는 2015년까지 현행 5%인 소비세율을 두 단계에 걸쳐 10%로 2배 인상키로 하면서 순응적이고 검약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 서민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다.
경기 침체로 가처분소득은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이제 더 이상 줄일 항목도 없다.
정부 부채는 이미 1000조엔에 이르렀고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 여기다 장기 금리까지 치솟을 경우 소비세율 30% 시대의 도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민이 봉이냐?’는 외침은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정부의 재정 구멍을 메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소비세율을 10%까지 올리기로 한 것은 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사회보장비가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치를 10%로 잡은 것은 2020년까지 재정의 기초적 수지를 흑자화하는데 필요한 수준이 10%라는 계산이 나와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의 사회보장비는 지난해 28조7000억엔으로 전체 예산의 53%에 달했다.
일본에서 의료비는 70대가 되면 40대의 5배로 늘어난다. 일본 정부는 현재 사회보장비가 매년 1조~1조3000억엔씩 늘어난다고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해 늘어난 세수를 연금, 의료, 요양 등 고령자를 위한 경비에다 육아 등 4개 항목에 배정해 사회보장의 질을 높이고 재정 건전화로 연결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종합연구소 조사에서는 일본 정부가 증대하는 사회보장비 부족분을 메우려면 소비세율을 10%는커녕 16.7%로 올려야 겨우 적자를 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부족한 사회보장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소비세율이 오히려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수요에 힘입어 2013년도 국내총생산(GDP)는 2.3%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소비세율이 인상되는 2014년도 GDP 성장률은 0.9%로 1.4%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세율 인상은 기업에도 전례없는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1997년의 소비세율 인상을 견뎌냈지만 현재 경제 상황은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
해외에서는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있고, 일본 국내에서는 디플레이션으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소비세율 인상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과감한 비용 절감과 사업 재편 등이 요구된다는 분석이다.
정치적인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집권 민주당 내에서는 총선거에서 패배를 우려해 증세 반대를 주장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국채는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증세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일본의 경상수지는 4373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2009년 1월 1327억엔의 적자를 본 이후 3년 만이며, 규모는 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다.
장기 금리가 급등하고 국채 이자지급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기 일보 직전이다.
일본 경제가 현재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그리스처럼 사실상 파국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은 최근 소비세율 인상을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국회의원의 세비(연봉 기준)를 14% 삭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인당 연간 300만엔의 세비가 삭감된다.
국민 부담을 늘리기 전에 정치권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이지만 고달픈 서민들의 설움을 어느정도 달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