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멈춰선 레미콘…"하루이틀 견디겠지만 공사 중단할 수밖에" 발만 동동

입력 2012-02-23 11:18수정 2012-02-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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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시멘트가격 인상으로 죽을맛, 건설사는 레미콘값 안올려줘"…이틀째 조업중단

▲시멘트 업계와 레미콘 업계간 가격 분쟁으로 전국 레미콘 공장들이 업무를 중단한 2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형레미콘 업체에는 160여대의 레미콘 차량들이 업무를 중단한 채 주차되어 있다.(사진=임영무 기자)

“업계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한 방법이 없습니다. 사태가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래야죠”(A아파트 건설 현장 관계자)

레미콘업계가 조업중단에 돌입한 22일 수도권 북부의 A아파트 건설 공사현장. 이날 시공사는 레미콘 타설 작업을 벌일 계획이었지만 레미콘 업체들의 공급 중단으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 아파트 현장소장 K씨는 “오늘은 넘기더라도 앞으로가 문제”라며 “미리 예상을 하고 어느 정도 대책은 마련해뒀지만 며칠이나 버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레미콘 조업중단 소식을 접한 K씨는 부랴부랴 레미콘 협력업체를 찾아갔지만 아무 소득 없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중소 레미콘업체들의 협회 격인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가 조업중단 선언과 동시에 소속 업체들에 대형차량을 보내 레미콘 출하를 봉쇄했기 때문이다.

K씨는 “사정을 해서 통할 일이 아니었다”며 “본사에 보고하고 곧장 현장으로 돌아와 다른 공정으로 대체하기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차로 2㎞ 가량을 달려 A아파트 시공사의 협력업체인 레미콘사를 찾아갔다. 줄지어 멈춰서 있는 20여대의 레미콘들이 한 눈에 들어왔고, 텅 빈 사무실은 직원 3명이 지키고 있었다. 조업중단과 동시에 사무직원 및 레미콘 기사들이 잠정 휴무에 들어간 것.

레미콘 업체 직원은 “레미콘 공급이 중단되자 건설현장에서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왔고, 한 중견업체는 대표이사까지 다녀가기도 했다”며 “건설사 사정은 안됐지만 연합회 차원에서 움직이는 일이라 어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일부지역 만의 모습이 아니다. 30분여 차를 타고 찾아간 인천지역 B아파트 공사현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골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현장 관계자들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현재 공정률 20~30%로 오는 3월부터 본격적인 레미콘 타설작업을 계획하고 있던 이 현장은 레미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될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장 관계자는 “당장 큰 문제는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공사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어찌나 철저하게 파업을 계획했는지 모든 협력업체에 연락을 취해봤지만 속수무책이다. 그 동안 신의를 바탕으로 일해 온 사업 파트너로서 이런 식은 곤란한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이날 750여개 연합회 소속 레미콘 업체들은 일제히 조업중단에 돌입했다. 연합회는 중소업체들은 물론 유진·삼표·아주 등 대형 레미콘기업에도 차량을 보내 출입구를 막아 레미콘 공급을 완전 차단했다.

연합회는 앞서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멘트업계가 통보한 가격 인상안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무기한 조업중단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시멘트업계가 레미콘의 원재료인 시멘트 가격을 인상해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고객사인 건설업계가 원가인상분을 구매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게 레미콘 업계의 주장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건설 불황이 장기화되다보니 (레미콘)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그로 인해 가격 불균형이 지속돼 왔다”며 “가격 인상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조업중단을 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공사 성수기를 앞두고 건설사들은 하나 같이 이번 사태가 길어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레미콘은 일반 건설 자재처럼 대량 저장해뒀다 쓸 수 없어 일주일 이상 공급이 중단되면 공사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GS건설 관계자도 “레미콘업계의 조업중단은 이전에도 있어 왔지만 길어봤자 2~3일 이었다”며 “사태가 길어지면 공사 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빠른 시일 안에 합의점이 도출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22일 오후에 열린 시멘트·레미콘·건설업계의 협상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끝났다.

이날 회의에서 중소 레미콘업체들은 시멘트 업계가 올해 초 톤당 시멘트 가격을 6만75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인상한 것을 철회하거나 인상폭을 낮춰줄 것, 또 시멘트 가격이 오르는 만큼 건설업체들이 레미콘 가격을 ㎥당 5만6000원에서 6만500원 수준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멘트 업체들은 가격을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을, 건설업체들은 레미콘 가격을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각각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멘트·건설·레미콘 업계의 3차협상은 오는 24일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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