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귀 막은 금융위원회

입력 2012-01-20 11:05수정 2012-01-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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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증권사로 분류되는 A사는 지난해 상반기 적자를 냈다. 하반기 집계도 마찬가지로 영업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A사는 앞으로 매년 150억원 가량을 운영비에 더해야 한다. 금융위원회의 ‘정보기술부문 보호업무 모범규준’ 때문이다.

금융위의 모범규준 중 핵심업무 아웃소싱 제한 규정은 실질적으로 “IT부문에 외주 시스템을 전혀 쓰지 말라”는 의미다. 현재 코스콤에 원장관리를 위탁하고 있는 33개 증권사는 모범규준 이행을 위해 사별로 최소 150억원을 지출하게 됐다.

금융위의 주문은 원칙적으로는 옳다. 그동안 중요성에 비해 홀대받던 금융IT는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IT 시스템은 결국 회사와 고객에 이득이 될 것이다. 증권사들 역시 IT부문 강화가 옳은 방향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경기둔화의 여파로 싸늘한 증권 업황에다 글로벌IB·자산관리 등 대형증권사 위주로 돌아가는 업계 분위기까지 겹쳐 중소형 증권사들은 ‘고사 직전’이라고 하소연한다. 더구나 자체 IT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외부에 위탁한 증권사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회사라는 점에서 금융위의 이번 아웃소싱 금지는 결과적으로 중소형사들을 겨냥한 조치가 됐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솔직히 우리가 없는 돈으로 급조해낼 시스템이, 코스콤의 그것보다 안전하고 좋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금융위는 그동안 업계와 법제처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세부내용을 수정해 왔고 앞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또 강제성을 띤 명령이라기보다는 권고 성격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적자 발표를 앞둔 A사 관계자는 “IT경영평가 결과는 금융사 경영평가에 반영된다”며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현실을 무시하고 강행하는 경우에는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졸속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가 귀를 활짝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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