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장관 앞에서 불만 얘기하라니…

입력 2011-1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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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보수에 만족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너무 잘 해주십니다”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학교 가는 것보다 출근하는 게 즐겁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구로구의 한 임플란트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특성화고 3학년 실습생들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남지역 특성화고 학생이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격무 끝에 쓰러진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특성화고 실습교육 실태점검 자리는 결국 이렇게 요식행위에 그치고 말았다. 전날 “직접 실태점검에 나서겠다”고까지 이 장관의 발언이 공허한 메아리가 돼 버리는 순간이었다.

애초부터 방식이 잘못됐다. 이제 고교 3학년에 불과한 18세 청소년들이 교과부 장관, 교육청 부교육감, 회사 대표와 임원 등 ‘높은 사람’들이 빙 둘러선 자리에서 어떤 불만을 얘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은 “만족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임플란트 공장은 특성화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좋은 곳’으로 분류된다. 학생들의 답변이 진심이라고 치더라도 애초부터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고민을 대변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장에 배석한 남주호 서울공고 교감도 “다른 곳은 이직이 빈번한데 이곳만 이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높으신 분의 방문에 맞춘 계획된 쇼’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한술 더 떠서 행사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에서는 학생들이 소속된 학교 교감교사와 노동청 관계자 사이에 “급하게 이런 좋은 곳을 마련하느라 수고가 많으셨다” 등의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이 장관이 정말 실습교육의 실태를 점검할 생각이었다면 보다 더 낮은 곳으로 향했어야 한다. 장관 앞의 학생들이 만족스러운 실습교육을 말하는 그 순간에도 기아차 공장에서 쓰러진 학생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많은 실습생들이 가혹한 근무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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