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그들은 누구인가]⑮지방발령

입력 2011-12-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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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장수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상·하반기 두번 수만명씩 이동

연고 없는 곳 가면 ‘두집 살림’

은행원들은 1년에 두 번 대규모 이동을 한다. 상반기는 1월말~2월초, 하반기는 7월말~8월초가 이동 시기다. 한 번 인사 때마다 전체의 5분의1에서 많게는 3분의1 가량이 움직인다. 대형은행의 경우 지점당 2~3명씩 이동을 하게되면 줄잡아 3000여명이 이삿짐을 꾸리는 것이다.

물론 같은 지역에서 옮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유배생활’을 떠나거나,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 상당수 사람들이 ‘두 집 살림’을 차린다. 하지만 은행원으로서 장수하려면 지방근무는 어차피 두세 번 정도 겪어야 할 일이다.

S은행의 한 부행장은 “승진을 하면서 한 두번은 지방근무를 경험하게 된다”면서 “되도록이면 연고를 고려해 배치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특히 첫 지점장 승진을 했을 경우 대개 지방근무를 발령내는 게 관행이라는 설명이다.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 능력을 발휘해 보라는 뜻에서다. 특히 학연, 혈연, 지연 등 인맥 중심의 영업에서 탈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영업전략 노하우를 전수하라는 뜻도 있다.

H은행의 김모 부장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지점장으로 근무를 했다. 김 부장은 “첫 지점장 발령을 받으면서 부산이 근무지로 정해졌다”면서 “영업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업전략을 짜고 접목시키는 일을 주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홀아비생활’을 면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함부로 학교를 옮길 수 없는 노릇에서다. 그래서 두 집 살림을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부산의 은행관사에서, 부인과 자녀들은 서울집에서다.

사실 은행원치고 지방근무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은행들은 직원인사를 할 때 근무지역에 관한 한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하려 애쓴다. 본인이 원하는 지역에서 일해야 생활도 안정되고 능률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망자만 지방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은행원들이 서울 근무를 원하면서 희망자로만 지방근무 인원을 채울 수 없어서다.

S은행의 이모 팀장은 “지방근무를 회피하다보니 아무래도 차장에서 부부장, 부부장에서 부장 승진할 때 지방근무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방근무를 인사고과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나 보내지는 않는다. 지역의 텃새를 무시할 수 없어서다. 이 팀장은 “서울에서 지점장이 내려가면 ‘조만간 시간이 지나면 떠나갈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텃새가 심하다”면서 “조직원간 화합과 리더십이 강한 사람을 내려보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지방근무를 하는 과장, 차장보다 지점장은 낫다는 평가다. 개인관사나 사택이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지역기관장회의의 정식멤버가 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대접받는다. 반면 과·차장들은 공동생활을 하는 사택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것만이 지방근무는 아니다. 지방의 대도시에서 도외지로 나가거나 연고와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근무하는 것도 지방근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에 연고가 있는 박모 차장은 울산으로 출퇴근을 한다. 자동차로 1시간40분 거리를 매일 달리는 것은 자신의 연고인 부산을 떠날 수 없는데다 몇년만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한편 다른 제조업과 달리 은행원들이 매년 대이동을 하는 것은 은행에서 사고예방을 위해 한 지점에 2~3년 이상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내규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철만 되면 은행 전체가 들썩거린다. 가는 식구를 보내고 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서다. ‘대이동’의 계절이 오면 자신은 어디로 발령을 받을까 고민하면서도 설레이는 이유다.

그러나 마냥 좋을수만은 없다. 지난 1년 또는 반기간의 업무실적(평가)이 대이동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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