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 직(職)’ 건 여야정 합의문 반나절 만에 ‘파기’
민주당이 또 다시 뒤집었다.
31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의 최대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절충안을 반나절 만에 전면 부정한 것.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새벽 마라톤협상 끝에 ‘원내대표 직(職)’을 걸고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엎은 것이다. 이로써 한 때나마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쏠렸던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다.
특히 농·어업 피해보전대책과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대책, 통상절차법,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 등 민주당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한나라당으로썬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 때문에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한나라당 의총에선 “99%를 양보하고 가져온 게 뭐냐”는 비판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무조건 반대”를 외친 정동영 최고위원 등 민주당내 강경파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이들이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한미 FTA 체결 주역이라는 점은 여전히 아이러니다.
이와 함께 야권통합을 눈앞에 둔 민주당이 한미 FTA 극렬반대 세력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눈치를 살피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평소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 간 합의가 이뤄지면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관례이자 상식으로 통했다. 하지만 이들 진보야당이 여야정 합의문을 정면 반대하고 나서면서 민주당이 크게 휘둘린 면이 없지 않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가 “핵심적 문제들을 완전히 빗겨간 누더기 합의문”이라고 비판하면서 야당공조 파기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한편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가 있던 이날 국회는 하루 종일 숨가쁘게 돌아갔다. 여야 의원총회가 열렸고, 민주당은 여야정 합의문 파기를 결정했다. 2차 여야 원내대표 회담마저도 무산됐다. 회담이 결렬되자 오후 5시50분쯤 남경필 국회 외통위원장과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 본청 4층 외통위원장실에 모였다. 남 위원장이 회의를 시작하려하자 야당 의원들은 곧바로 회의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1시간30분가량 대치를 지속했다.
남 위원장은 오후 7시30분께 밖으로 나와 “야당이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을 하면 실망만 안겨드리기 때문에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며 회의를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남 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 긴장이 고조됐지만 심한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 민노당은 이때부터 1일 현재까지 밤새 국회 외통위원장실을 점거에 나섰다. 혹시 모를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안 기습 처리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5명씩 돌아가며 오는 3일까지 점거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예산안 심의 등을 위해 열리는 이날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다시 한 번 비준안 처리를 시도할 계획이어서 극심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