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에 경종…'따뜻한 자본주의' 시작됐다

입력 2011-10-13 10:51수정 2011-10-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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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자본주의]<하>전문가 진단

자본주의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신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뉴욕의 월가에 대한 분노가 북미를 넘어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승자의 독식 구조로 전락한 신자본주의의 모순점에 대한 불만이 청년과 노동자들의 분노로 이어지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정글의 세계에서 소외되며 실업과 가난이라는 상대적 빈곤에 지친 이들은 금융을 중심으로 발달된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본지는 사회학자, 경제학자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월가 시위의 근원적 원인과 신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 월가 시위는 청년의 실업문제를 넘어 신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반감에서 폭발했다는 시각이 있는데.

이상민 교수 =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성장이 멈추거나 경기불황이 닥치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미국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크레디트카드를 앞세운 과소비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모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노미 현상에 빠져 있다.

장덕진 교수 = 월가 시위 참여자 전원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업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연관돼 있고 참여자 중 상당수는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장진호 교수 = 경제학자 케인즈가 옹호한 금융 본래의 모습인 ‘생산과 서비스에 대한 지원자’로서의 위상보다 소위 ‘돈으로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하게 된 것이 배경이다. 나라간 투기적 자본이동을 통해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했고, 이것은 실물경제를 파괴하면서 실업자 양산이나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 했다. 이것이 분노로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병서 교수 = 당연하다. 신자본주의는 미국에서 빈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금융기관들의 모럴헤저드가 극에 달했고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실업은 급증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신규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실업율이 10%를 훨씬 넘고 있다.

- 그렇다면 신자본주의의 모순점은 무엇인가.

이상민 교수 = 신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모두가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가 궁극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환상이 그것이다. 파이를 불리는 작업과 병행해 나눠주는 작업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그 체제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문을 닫게 돼 있다.

장진호 교수 = 금융주도적이 된 자본주의는 다양한 비즈니스 방식을 통해 경제적 상층에 부를 과도하게 집중시켰다. 반면, 대중은 생산적 일자리가 줄어 들면서 소득을 상실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이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나타나고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병서 교수 =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는 효율적 시장의 기능을 믿으며, 시장의 기능을 저해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만능이 아니며 규제가 없는 시장은 통제 불능의 체제가 되어버렸고 승자 독식의 결과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 결과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를 줄이면서 계층 간의 간격은 대를 이어서 벌어진다.

- 신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면은 사라지고 유독 승자의 독식 등 나쁜점만 부각되고 있는데.

이상민 교수 = 현재 신자본주의 체제는 겉으로는 공평한 자유경쟁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과거로의 회귀, 즉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는 귀속지위가 많은 부분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계층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해 졌다는 점이다.

장덕진 교수 = 신자유주의의 진전과 더불어 계층 상승이동의 사다리(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는 빠른 속도로 끊어지고 있다. 반면 하층계급으로의 추락(누구나 가난한 자로 전락)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뚜렷이 확인되는 현상이다.

장진호 교수 = 시장의 자유경쟁은 독과점으로 귀결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현재 신자본주의에서는 자유경쟁보다 업계의 시장지배적인 거대행위자들이 경쟁을 배제하게 된다. 이러한 시장지배적 행위자들에 대해 정부는 여타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미국 정부가 이러한 시장지배자들의 승자독식에 대해 제동을 걸지않고 방조자 혹은 촉진자 역할을 해왔다.

최병서 교수 =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성에 의해 보수를 받고 시장에서 효율적인 기업이 이익을 내고 살아남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의 양극화된 부의 편중, 대규모 실업의 양산을 낳는 현 자본주의 체제는 이대로 존속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본다. 즉,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체제가 되려면 각 경제 계층간에 조화와 공평이 전제돼야 한다.

- 이번 시위가 신자본주의에서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변화하는 패러다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나.

장덕진 교수 = 현재의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뚜렷한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었다고는 생각되진 않는다. 설사 설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따듯한 자본주의, 인간적 자본주의인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장진호 교수 = 지도층들이 도덕적인 가치를 보다 내면화하고 확산해 신자본주의적 빈부 격차나 승자독식 등을 자성할 수 있겠지만 ‘경제적 상류층 일부의 자발적 자성’이 경제체제 차원의 구조개혁이라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최병서 교수 = 그렇다.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으로 포장되었지만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시스템이 아닌 인간의 동정심(sympathy)에 호소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상민 교수 = 시위는 못 가진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듯이, 오늘의 부자들 역시 내일 길거리에 나가 구호를 위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장덕진 교수 = 국제비교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한국은 객관적 조건만으로는 미국보다 훨씬 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야 마땅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사회적 혼란이 없이 버티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양보와 사회통합의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인내가 바닥나는 순간 일어나게 될 혼란은 클 것이다. 빠른 시일 안에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장진호 교수 = 대중들의 일자리 상실, 소득감소와 부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체제는 이처럼 정치적으로 반발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고 도덕적으로는 불의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병서 교수 = 우리 나라 입장에서 볼 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유럽의 시위가 미국으로 퍼져나가기 전 유럽 젊은이들의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되었을 때 어떤 칼럼니스트는 ‘아직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돌멩이를 들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세계적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우리 나라에서도 청년실업이 급증한다면 아무도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젊은이들의 불만은 아마도 서울 시장 선거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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