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순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삼성그룹을 추월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동기대비 42.5% 증가한 9조1678억원으로, 8조013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삼성그룹을 1조원이나 앞섰다.
집계 기준이 달라 맞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거래소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불리는 삼성그룹으로서는 적잖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이같은 실적은 올 상반기에 자동차 경기가 좋았던 반면, 반도체·LCD 등 전자업종의 시황이 악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록 올해 상반기 실적에 지나지 않지만 현대차그룹이 삼성그룹을 제쳤다는 사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이병철 회장이 재계 양강구도를 형성했던 과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케 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성금을 낼때, 삼성그룹이 기준이 되고 현대차를 비롯한 나머지 그룹들이 삼성보다는 일정 규모 적은 수준에서 냈던 관행도 현대차에 의해 깨졌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증권가에서는 하반기에도 IT 수요가 크게 개선되지 않아 성장이 제자리 걸음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동차 수요는 신흥국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올해 전체 순이익에서 현대차그룹이 삼성그룹을 앞설 가능성도 높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재계순위(자산기준, 공기업 및 민영화 된 공기업 제외)에서 삼성그룹이 230조9000억원으로 1위를 기록했고, 현대차그룹은 126조7000억원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54조4000억원), KCC(10조2000억원), 현대(13조7000억원), 현대백화점(8조4000억원) 등 범현대가의 자산을 아우르면 213조4000억원이 된다.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이 분열됐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삼성과의 격차를 현격히 좁힌 셈이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한 이후, 2005년부터는 줄곧 재계 2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현대차와 기아차, 모비스 등 현대차 핵심 계열사들은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삼성과의 격차도 점차 줄이면서 전통의 라이벌이던 ‘삼성-현대’구도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그룹이 약진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과거 개발시대부터 이어진 삼성과 현대의 전통적인 라이벌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도 엿보인다”며 “현대가의 적통이라고 평가하는 현대건설마저 인수한 정 회장을 중심으로 현대가가 뭉친다면 재계 1위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주요 그룹들이 성금을 기탁하는 시기와 규모다. 대체적으로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이 가이드라인으로, 삼성그룹이 기탁하는 액수를 기준으로 나머지 그룹들이 액수를 정하게 된다.
2009년과 2010년 삼성은 200억원을 기부했으며, 현대차와 SK, LG 등 4대그룹은 100억원씩 기부했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현대차그룹은 삼성그룹이 성금기부의 테이프를 끊기 하루 전인 12월 20일에 성금 100억원과 13억원 상당의 생활필수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다음날 삼성그룹도 200억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기부금 규모에서 아직 현대차가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하지만 삼성그룹의 기부결과를 보고 기부금과 시기를 결정하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의 자신감이 보이는 대목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기부결과가 아직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대차그룹의 경우 독자적으로 기부 규모나 시기를 결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차원의 기부 뿐만 아니라 현대가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은 최근 동생 정몽준 의원에 이어 5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현대가의 두 사람이 1조원이라는 거금의 사재를 출연하면서 다른 재벌총수들도 자발적인 기부가 이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재계 총수들이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