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계 은행 부도 위험 2008년 위기 때보다 악화
지난달 금융쇼크 이후 한국 주식·채권시장에서 유럽계 자금 5조5000억원 가량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신용등급 하향조정 이후 전 세계가 저성장 공포에 휩싸인데다, 유럽계 은행들의 부도 위험이 상승하자 유럽계 외국인들이 신흥국 대표격인 한국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있었던 지난달 이후 8일까지 유럽계 외국인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3조9991억원, 채권시장에서 1조4724억원 어치를 합쳐 모두 5조4715억원을 순매도했다.
유럽계 외국인은 올해 들어 7월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7조4951억원 어치를 순매도했지만, 채권시장에서는 1조9246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하지만 유럽지역 재정위기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자 유럽계 외국인은 지난달 이후 한국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에서마저 순매도로 전환한 것이다.
하나대투증권 조용현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이 주식시장에 이어 채권시장에서도 이탈하기 시작한다면 국내 금융시장 내에서도 주식시장에서 채권시장, 외환시장으로 변동성이 전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유럽계 은행의 부도 위험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 당시보다 상승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0일 현재 프랑스계 유럽 대표 은행인 BNP파리바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75bp(1bp=0.01%포인트)로 전날보다 33bp 폭등했다.
역시 프랑스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SG)의 CDS프리미엄은 390bp로 전날보다 무려 57bp 뛰어올랐다. 이 은행들의 3년 전 금융위기 당시 CDS프리미엄은 120bp대에 불과했다.
통상 CDS프리미엄이 400bp를 넘어가면 해당 은행은 발행한 채권이 차환발행이 안 돼 자본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부 프랑스계 은행은 거의 부도 직전에 도달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은행들의 부도 위험도 1년1개월 만에 최고치 수준으로 치솟았다.
8일 현재 8개 한국은행의 평균 CDS프리미엄은 158bp로 작년 8월 10일 166bp 이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은행들의 CDS프리미엄은 지난달 말 149bp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160bp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개별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의 CDS프리미엄이 지난 8월 말 현재 181bp로 작년 3월 말의 115bp에 비해서는 66bp 상승했다. 우리은행은 5월 말 119bp, 6월 말 132bp, 7월 말 135bp 등으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신한은행의 CDS프리미엄은 지난달 말 170bp로 작년 3월 말의 103bp보다 올라갔고 국민은행은 102bp에서 161bp로 상승했다. 다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151bp, 수출입은행은 149bp로 시중은행에 비해 낮았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한국은행들의 CDS프리미엄은 외화 차입 리스크를 나타내는 대리지표로 CDS프리미엄이 상승할수록 외화차입 리스크는 올라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CDS프리미엄 역시 급등하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달 말 현재 178bp로 3월 말의 62bp보다 거의 3배 수준으로 뛰었다. 이 회사는 올해 4월 말 91bp, 5월 말 97bp, 6월 말 114bp, 7월 말 120bp 등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말 현재 151bp로 작년 3월 말의 97bp에 비해 54bp 상승했다. 한국전력은 66bp에서 142bp로 76bp, KT는 61bp에서 128bp로 67bp 각각 높아졌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전략팀장은 “모든 부실은 결국 은행위기로 연결된다. 통상적으로 은행위기는 은행간 신뢰악화, 자금거래 경색, 단기금리 급등, 은행 차입청산, 중개기능 마비, 은행부도 순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도 과거와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2008년과의 차이점은 미국이 아니라 유로지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