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서 길거리 김밥을 살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거래에 있어서 반드시 신분증을 제공해야 하는 거래 관행이 정착돼 있으며 인터넷 실명제(본인확인제)는 굉장히 기형적이고 이상한 제도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주최로 16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350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원인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네이트와 싸이월드 해킹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의 주범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지목돼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날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제한과 관련된 것으로 어떤 권리를 침해당한 사례가 있으면 피해를 입힌 사람을 추적하기 위해 신원 정보를 보관하는 것”이라면서 “그것마저도 소셜댓글에 의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는데 인터넷 실명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본인확인이란 목적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름과 주민번호를 사업자가 대조해 확인하는 ‘실명확인’일 뿐이지 ‘본인확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실제 본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이든, ISP인증이든 추가적인 인증이 필요하지만 현금 거래가 아닌 인터넷 표현행위를 위해 그런 수고를 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전 이사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입이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을 위해 반드시 사업자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법적 근거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대포폰도 합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업자들은 후불 요금제로 인한 체납 혹은 미납의 리스크를 담보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하지만 선불요금제에서도 여전히 주민번호를 요구한다”면서 “정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명의도용 처벌 강화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이미 유출된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면서 “기업들이 과도한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1차적으로 기업의 책임이지만 정부가 규제는 커녕 오히려 그것의 수집을 조장했다”고 꼬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350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언론과 전문가, 국회 입법조사처까지 인터넷 실명제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나서자 “인터넷 실명제(본인확인제)를 검토한 바가 없으며 본인확인제와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유출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오병일 활동가는 방통위가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으로 권고하고 있는 아이핀(i-PIN) 홈페이지를 보면 주민등록번호 실명확인은 개별 웹사이트에 저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본인확인제가 주민등록번호 의무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설명이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주민등록번호 이용 자체를 고유 행정 목적으로 최소화해 그 이용가치를 줄이지 않는 한 주민등록번호 도용의 위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아이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아이핀을 도입한 지 4년이 넘었지만 8월 현재 아이핀 사용자는 360만명에 불과하다는 것. 자신 명의로 핸드폰이나 신용카드를 개설하지 않은 사람은 그나마 아이핀에 가입할 수 조차 없다.
유출된 주민번호 도용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오 활동가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주민번호가 유출된 사람은 평생 도용에 의한 피해를 의식하면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민번호 재발급이 필요하다”면서 “탈북자들에게 주민번호를 변경해 준 사례가 있으며 주민등록법 시행령에서도 주민번호에 오류가 있는 경우 정정할 수 있도록 하므로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