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재클린, 리즈 테일러, 그리고 노태우

입력 2011-08-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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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수석부국장 겸 산업1부장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노태우 회고록’에서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 측에 선거자금으로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 돈을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전 의원을 통해 전달했으며, 녹취록도 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제공을 공개한 것은 “비자금으로 파생된 일들로 함께 일한 많은 사람과 국민에게 걱정과 실망을 안겨준 데 자괴할 따름”이라며 “내가 마지막 사람이었기를 진실로 바란다”고 썼다.

충심이길 바라지만, 세간의 시선은 차갑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를 들춰내 처벌한 것에 대한 반격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비자금 제공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노 전 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서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공개 시점이 적절치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본인을 비롯해 당사자들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12.12와 6.29선언 등에 대한 노 대통령의 기억이 너무 주관적이라는 점도 회고록 발간이 적절치 않다는 시각을 낳고 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유언비어가 진범’이라는 대목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식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펴낼 회고록에서는 또 어떤 자기중심적인 과거사가 튀어나올 지 의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회고는 객관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공개하는 시기도 중요하다.

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여사이 ‘케네디 대통령 암살’ 배후 인물로 당시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을 꼽았다는 폭로가 최근에서야 공개됐다는 점과 비교된다.

ABC방송이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는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비밀 내용이 담긴 테이프에는 케네디 암살은 단독 범인으로 알려진 하비 오스왈드 외에 존슨 전 대통령과 텍사스 기업인들이 공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텍사스 출신인 존슨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최대 수혜자로 드러나 이같은 폭로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내용의 진위 여부 보다 공개 과정이 더 화제다.

이 테이프는 케네디가 숨진 지 수개월 뒤에 녹음됐다고 한다. 재클린과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의 대담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그동안 보스턴의 케네디 도서관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클린은 테이프가 공개될 경우 자신의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해 사후 50년까지 테이프 내용을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재클린은 지난 1994년 64세에 암으로 사망했고, 그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암살에 관련됐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3일 타계한 세기의 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숨겨왔던 얘기도 흥미롭다.

지난 1997년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인터뷰했던 케빈 세섬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사망한 직후 영국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제임스 딘이 11살때 자신을 돌봐주던 목사에 의해 성희롱을 당했으며, 이를 생전 절친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털어놨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제임스 딘으로부터 들은 이 충격적 비밀을 평생 간직했으며 ‘이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나이 어린 어린이에게 성적 치욕을 안긴 파렴치한 목사를 공개해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게 옳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이처럼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도 더러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굳이 생전에 회고록을 펴내 물의를 빚는 것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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