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여제’ 라가르드의 숙제

입력 2011-07-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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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오랜 전통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불륜’이다”

프랑스 정치권에 만연한 ‘마초(macho)의 폐단’을 지적한 한 외신의 말이다.

발단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 폭행 미수 사건이다. 칸 전 총재는 순간의 실수로 잡범으로 전락, 현재 뉴욕 시내의 한 타운하우스에서 삼엄한 감시 속에 7월18일 공판 날만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다.

그 사이 IMF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을 새 수장으로 맞았다.

새 수장은 공교롭게도 자유와 평등 불륜을 전통으로 하는 나라 프랑스 출신 인사다.

게다가 은빛 머리카락과 샤넬 재킷, 에르메스 백을 애용하는 ‘여자’다. 회색 정장 일색인 금융계에선 이례적인 일.

정재계에서 여성의 신분상승을 막는 유리천장이 깨진 지 이미 오래인 지금, 라가르드의 의미는 특별하다.

우선 IMF의 당면 과제인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를 진화하는데 ‘여자’를 소방수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라가르드는 ‘남자’들이 득실대는 금융 정글에서 남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세계 금융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유로존 붕괴설까지 나오는 등 IMF의 64년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서 여성을 방패막이로 삼은 셈이다.

더 아이러니한 건 프랑스판 지퍼게이트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칸 전 총재의 후임자가 또 프랑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0명의 IMF 총재 중 4명이 프랑스 출신이었다.

IMF와 세계은행 수장 자리를 놓고 미국과 유럽간 나눠먹기식 관례 인사라면 ‘이제 할만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차라리 칸 전 총재가 성 추문으로 실추시킨 IMF와 프랑스의 명예를 되돌려 놓으라는 취지라면 납득이 가겠다.

그리스 사태의 해결을 놓고 차기 총재의 중립성도 의문이다.

프랑스 은행들의 그리스 부채 보유 규모는 유로존에서 독일 다음으로 많다.

IMF가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의 해결을 주도하는 가운데 르랑스 출신 인사가 어느 정도의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라가르드는 오는 5일부터 5년간의 임기에 들어간다.

전세계는 더 이상 그의 입맛과 패션, 과거사엔 관심이 없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서 그의 수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기대에서 어긋날 경우 ‘남자’들은 그가 여자라는 점과 경제학자 출신이 아니라는 점, 이혼녀라는 점들을 새삼 들춰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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