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 국제부장
친숙한 말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유래 역시 다양하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국책(戰國策)의 위책(魏策)에는 사분오열(四分五裂)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분열된다는 뜻으로 여러 갈래로 세력이 흩어져 약화한다는 의미다.
기원전 4세기, 진(秦)나라의 동진에 대비하기 위해 위(魏)나라와 주변 여섯 나라는 동맹 관계를 추진했다.
동쪽의 제(齊)나라, 남쪽의 초(楚)나라, 북쪽 조(趙)나라, 서쪽 한(韓)나라 등과 연합하지 않는다면 결국 서로 적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가 합종을 통해 힘을 키우려 하자 진나라의 재상 장의는 위나라 왕을 만나 제, 초, 조, 한 등과 연합하더라도 결국 사분오열할 수 밖에 없다며 진나라와 힘을 합칠 것을 권했다.
결국 위나라가 진나라의 계략에 말려들면서 진나라의 통일로 춘추전국시대는 막을 내린다.
5세기 경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는 화살을 부러뜨린다는 의미의 절전(折箭)이라는 말이 쓰였다.
북사(北史) 토욕혼(吐谷渾) 왕 아시에게는 20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시는 어느 날 아들들을 모아 놓고 화살 하나씩을 손에 쥐고 부러뜨리도록 했다. 물론 쉽게 부러뜨렸다.
아시는 다시 화살 열아홉 개를 쥐고 한번에 부러뜨리도록 했다.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힘을 합치면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지만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단합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단생산사(團生散死)를 외치며 백성들이 뭉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서양에도 비슷한 의미의 명언이 많다.
17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식민지군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당시 정치계에 갓 입문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은 식민지의 분열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1754년 자신이 운영했던 펜실베니아 가제트지에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는 정치 카툰을 실었다.
이 카툰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치르는 식민지 주민들의 자유를 위한 상징이 됐다.
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2년째 이어지고 있다. 진저리가 날 정도다.
그리스부터 시작된 국가부도 위기는 아일랜드와 스페인 등 주요국을 지나 다시 그리스로 '유턴'했다.
그리스는 지난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1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유로존 주요국은 추가 지원 여부를 놓고 다시 갈등하고 있다.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가 민간채권자의 참여를 놓고 입장차를 줄였다지만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기대를 모았던 20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도 별다른 소득없이 끝났다.
그리스의 재정긴축안이 가결되지 않으면 추가 지원이 어렵단다.
맞는 말이다. 자국의 부도 위기는 그리스가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리스의 위기는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피할 수 없었던 업보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연합하지 못한 채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로존 설립은 단일통화 출범이라는 대륙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국가간 경제 차이, 성장률과 인플레, 금리의 조정 없이 이뤄진 통합은 거대 경제구역의 붕괴 위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 회원국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재정위기 사태를 잡지 못하고 유로존이 붕괴한다면 그 파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마음 같아서는 사르코지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에게 단생산사가 담긴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라도 전하고 싶은 심정이다.
유로존의 단결을 주도할 유럽의 프랭클린과 이순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