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강등 경고...재정악화ㆍ정국 혼란ㆍ경기 위축
2010 회계 말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터진 동일본 대지진이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나던 일본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지진에 따른 피해 복구 비용을 대느라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를 이유로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줄줄이 끌어내리고 있다. 급기야 경제성장률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일본 경제를 또다시 침체로 몰아넣었다.
간 나오토 총리의 퇴진을 둘러싼 난타전으로 정계에는 일대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총체적 난국에 처한 일본의 위기는 안중에도 없다.
◇ 국가 신용등급 추락 눈앞 =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가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한 데 이어 무디스가 실제로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겠다고 나섰다.
무디스는 31일(현지시간)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현재 ‘Aa2’에서 하향 조정하기로 하고 검토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무디스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재정 악화에다 정부의 재정적자 삭감 의지가 미약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 2월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한 이후에도 정부가 제안한 세제개혁안 등에 진전이 보이지 않자 실제로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키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3개월 내에 신용등급이 또다시 내려갈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3개월 후 S&P와 피치도 같은 이유로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실제로 강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미즈호인베스터즈의 오치아이 고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디스가 한 단계 하향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 재정은 파탄 위기 = 대지진 복구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면서 가뜩이나 선진국 최고 수준인 일본의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재무성이 밝힌 일본의 국가 부채는 2010 회계연도말(2011년 3월말) 현재 924조3596억엔으로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이는 전년 말에 비해 41조4361억엔 증가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일본의 재정적자는 대지진이 아니어도 국내총생산(GDP)의 7.9%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대지진 피해 복구 비용으로 최대 10조엔이 투입될 경우를 감안하면 일본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현재 수준보다 1~2%포인트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의회는 지난 2일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4조엔 규모의 2011년도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1차 때보다 더 큰 규모의 2차 추경예산을 추진해야 하지만 이미 1000조엔에 육박하는 국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만큼 쉽지 않다.
1차 때는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는 대신 국제 기구에 대한 기부금을 줄이고, 국회위원들의 비용을 삭감하는 등 일부 복지 프로그램을 수정해 충당했다.
전문가들은 2차 추경예산 편성 때는 국채 추가 발행은 물론 세금 인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정계는 총리 난타전 = 현재 일본 정계는 총리의 퇴진을 둘러싼 난타전이 한창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세제개혁도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회보장 비용 등 재원 마련을 위해 소비세율을 오는 2015년까지 2단계에 걸쳐 1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민심까지 등을 돌린 가운데 여야 안팎에서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간 총리는 자리를 보전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간 총리의 측근들은 내각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될 경우 간 총리는 퇴진 의사를 밝히는 대신 중의원 해산과 총선이라는 초강수를 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으로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일본 언론들은 중의원 해산과 총선은 이르면 자민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는 6월 초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내달 초 일본 정국에는 또다시 혼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 경제는 뒷걸음질 =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일본 경제에 예상보다 큰 충격을 안겼다.
대지진 충격에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도 모두 엉망이었다. 31일 나온 4월 실업률은 4.7%로 전달보다 0.1%포인트 상승했고, 같은 달 산업생산은 전월에 비해 1% 늘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앞서 25일 발표된 4월 무역수지는 3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19일 발표된 1분기(1~3월) GDP 성장률은 연율 마이너스 3.7%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4분기의 연율 마이너스 1.3%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경제가 2분기 연속 위축됐다는 것은 경기 침체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대지진으로 서플라이체인(공급망)에 혼란이 생기면서 일본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산업활동에 차질이 빚어진 영향이 가장 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BNP파리바의 고노 류타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지진이 분기 마감을 앞두고 발생했지만 대지진 이후 경제활동이 1분기 경제를 침체 국면으로 끌어내릴 만큼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 경제가 다음 분기에도 대폭 위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플라이체인 문제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돼 생산 차질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즈호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지진으로 인해 개인소비가 크게 침체되는 것은 물론 수출도 줄어들 것”이라며 “2분기(4~6월)도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그는 “3분기부터는 성장 기조를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