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診]'뜨거운 감자' 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입력 2011-05-06 11: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이용 제한하라" VS "정당한 권리행사" 격렬 공방

올초 5만5000원짜리 스마트폰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가입한 A씨. 그가 지난달 사용한 데이터 양은 130GB(기가 바이트)를 훌쩍 넘었다. 통상 DVD 영화 1편의 용량이 2GB인 점을 감안하면 매일 스마트폰으로 영화 2편 이상을 감상한 셈이다. 스마트폰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이용해도 추가 요금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왕이면 본전 생각에 최대한 끌어 쓰자는 것이 A씨 생각이다.

반면 같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B씨는 데이터 이용보다는 음성통화가 잦은 편이다. 한달에 그가 사용한 데이터 양은 고작 0.3GB(300메가바이트)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자주 이용하는 편이 아니다. 음성통화 역시 스마트폰으로 교체한 이후 통화 중간에 끊김 현상아 잦아 분통을 터트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데이터 트래픽이 하루가 다르게 폭증하면서 과부하로 인한 현상이다.

‘콸콸콸’로 대변되는 데이터 무제한 시대가 1년도 안돼 위태위태하다. 특정 지역에서 한정된 통신망을 많이 쓰는 사용자(헤비유저)들이 망을 독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용량이 줄어들어 통신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남용이냐…정당한 소비자 권리냐= 만약 A씨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아닌 정상적인 요금제에 가입했다면 한달동안 무선인터넷 사용 요금으로 약 25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8월부터 이동통신 3사가 경쟁적으로 도입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덕분에 한달에 5만5000원만 지불하면 된다. 요금 걱정을 전혀 않는다.

문제는 A씨와 같은 헤비유저들이 당초 예상보다 10배, 100배 많은 데이터를 쓰는 바람에 다른 소비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헤비유저가 통신망을 독점하는 실태는 심각하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KT와 SK텔레콤 고객 중 상위 10%가 전체 데이터 사용량의 90% 안팎의 데이터를 사용하면서 일반 소비자들이 음성통화 불량, 데이터 속도 저하 등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 헤비유저나 보통소비자들이나 요금은 똑같다. 보통 소비자들은 적은 데이터를 사용하고도 비싼 요금을 물고 있는 셈이다. 통신선만 더 깔면 얼마든지 용량을 늘릴 수 있는 유선과 달리 무선은 이통사 별로 주파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용량을 늘리기가 간단치 않다.

이통사들도 이들 헤비유저의 데이터 사용을 제한하자니 약정을 깨는 것이고, 망을 증설하자니 5%에 불과한 헤비 유저를 위한 조치 치고는 비용 부담이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헤비유저의 데이터 소비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의 ‘소비자 지위를 남용한 악용’이냐,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냐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헤비유저의 데이터 이용 제한에 찬성하는 측은 데이터 남용과 다른 사용자의 피해를 문제삼는다.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녹색시민연대 관계자는 "5% 안팎의 헤비유저 때문에 나머지 95% 사용자가 데이터 이용에 불편을 겪는 것이 가장 문제“이라며 “헤비 유저를 위해 통신사에 망 증설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투자’를 압박하고 일반 소비자들이 비싼 요금을 부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해 이들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데이터 이용은 통신사와의 계약에 기반한 정당한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자신이 헤비유저 범주에 포함된다는 직장인 박상훈(가명)씨는 “이통사들이 지난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했을 때 대다수 소비자들은 ‘무제한’이라는 용어를 보고 요금제에 가입했을 것”이라며 “필요한 만큼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독배(毒杯)’를 마신 이통사 어찌할꼬= 헤비 유저의 데이터 이용 제한에 대한 의견이 이처럼 분분한 가운데 국내 통신사들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통사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SK텔레콤이 데이터 무제한이라는 공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자 KT와 LG유플러스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뒤를 이었다. 기존 가입자들이 SK텔레콤으로 옮겨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가 통신망에 큰 부담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대안이 없었다.

급기야 지난해 연말 KT와 LG유플러스가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사실상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터 무제한 가입자 중 각 사가 정한 1일 사용량을 넘어선 사람에게 네트워크 과부하가 우려될 경우 일부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단 것이다.

KT는 서울 전역에서 하루 데이터 사용량이 70MB가 넘은 사람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통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제한을 하고 있지는 않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예 와이파이 설정 기능을 꺼놓고 3G망을 통해서 불필요한 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하다보니 전파자원의 낭비 및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데이터 사용량에 제한이 없다보니 돌발적 상황이나 데이터 트래픽 수요 폭증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 통신망의 효율적 자원관리가 매우 어렵다”면서 “스마트폰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늘어난 상황에서 태블릿PC까지 가세하면 데이터망의 과부하가 한층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이패드2 등 태블릿PC에 적용된 애플리케이션의 데이터 사용량은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애플리케이션에 비해 많은 경우가 많다.

IT기기에 관심이 많고 데이터를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한 헤비유저가 스마트폰처럼 태블릿PC에서 많을 용량의 데이터를 소진할 가능성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에도 이통사들이 유선 인터넷도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매기는 종량제를 추진했으나 사용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미국 통신사들은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하는 추세다. AT&T는 지난해 6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없앴고, 버라이즌도 뒤따를 예정이다.

한국 시장에서 어느 통신사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폐지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설 지 주목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