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신관치’ 식 업무추진 방식에 대한 금융권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 저축은행 사태, 전산 보안 등 현안과 관련해 금융당국의 주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금융감독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8일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조찬간담회에 호출하면서 본격적인 금융권 ‘군기잡기’에 나섰다.
이날 회동은 대부분 정치권에 끈이 닿아있고 금융권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자랑해 ‘5대 천왕’이라 불리는 지주 회장들을 불러모아 금융권을 확실하게 쥐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기 위한 당국의 포석으로 풀이된다. 당국은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에게 PF 문제 등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건설사의 PF에 대해 금융권의 지원이 소극적이라고 판단한다”는 김 위원장의 모두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상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실제로 이같은 흐름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소신이 있는 ‘영원한 대책반장’ 김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일찌감치 예견됐던 일이다. 권 원장 역시 지난 3월 취임사를 통해 “금융안정과 금융신뢰의 종결자가 되겠다”라며 검사와 감시 기능을 강화겠다는 뜻을 내비쳐 금융권을 긴장시켰다.
이에 대해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주사 회장은 (은행의) 여신하고 관련이 없고 은행장도 요즘엔 마음대로 여신을 좌우하지 못한다”면서 “결국은 공공연하게 여신에 개입하라고 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이어 “관치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과 같이) 시장이 실패했을 때나 하는 것이지, (은행들이 PF에 억지로 손을 댔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은행장들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금융감독당국이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 전격 회동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은행장 18명을 한꺼번에 부른 것도 ‘신관치’ 방식의 업무추진이라는 지적이다. 지주사 회장들에게 금융 현안에 대해 구두로 협조 약속을 받아냈다면, 이날은 은행장들로부터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다짐받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권 원장은 이자리에서 부동산 PF, 기업구조조정, 과당경쟁, 카드론, 가계부채, 여신 관행, 은행들의 해외 진출, 금융소비자 보호, 전산 보안, 지배구조 개선 등 10여 개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당국의 모습은 ‘하라면 해라’식의 관치를 보는 듯 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권 일각에선 당국의 일방적인 주문이 주주 권리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당국과 금융지주 회장들의 간담회에서 나온 부동산 PF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배드뱅크(Bad Bank)’ 설립 소식이 증권시장에 전해지면서 이날 장중 은행업종 지수가 3% 안팎 하락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당국에 휘둘리다 주주들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