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ㆍ사장 사의 표명...6월 대대적 경영 쇄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주범인 도쿄전력이 대대적인 경영 쇄신에 들어갈 전망이다.
오랜 세월 일본 정부와의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규제의 성역이었던 도쿄전력의 모럴해저드 관행도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가쓰마타 쓰네히사 도쿄전력 회장은 17일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에 이어 원전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말했다.
공식 사임 시기는 오는 6월 열리는 주주총회가 될 것이며, 이 자리에서 대대적인 경영 쇄신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타냈다.
일련의 사태로 더 이상 도쿄전력을 이끌 만한 신뢰와 구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전력 수장들의 잇단 사의 표명은 그 동안 도쿄전력이 공기업으로서 누려온 권력의 붕괴를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다.
도쿄전력의 몸집은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의 10배. 1도 8현에 전력을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수도권에서만 20만개가 넘는 기업과 26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어 일본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존재다.
현재 총 17기 원자로 가운데 13기의 가동이 중단됐으며, 20개 석유 화력발전소 절반과 2개의 석탄 화력발전소도 가동이 멈췄다.
여기다 도쿄전력은 회사채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도쿄전력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엔이 넘고, 주주 수도 80만명에 이르러 무너질 경우 파급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전 사고로 수조 엔에 이르는 배상액을 앞두고 정부가 도쿄전력의 일부 국유화 의사를 밝힌 것도 대마불사 원칙이 작용한 탓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쿄전력의 원전 사고 발생 초기의 부실 대응은 이처럼 너무 커서 섣불리 손댈 수 없다는 공기업이라는 지위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가 금융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FT에 따르면 도쿄전력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은폐와 엉성한 기준의 역사가 있다. 지난 2002년에는 원자로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안전성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발각돼 파문을 일으켰고, 이번에는 후쿠시마 원전의 예비 발전기를 지하에 방치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도쿄전력 측은 부정했지만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 원자로 냉각에 바닷물 투입을 늦췄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만연해있는 낙하산 인사다. 도쿄전력과 정부는 한 몸이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유착관계가 심해 조직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례로 원전 사업을 규제하는 경제산업성에서 자원에너지청 장관을 지낸 인사가 올해 도쿄전력의 자문에 취임해 논란이 됐다. 규제 당국이 기업의 자문을 맡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
지난달 원전 사고 발발 초기 한때 자취를 감춘 시미즈 사장은 대기업 로비단체인 게이단렌의 부회장으로, 이 역시 도쿄전력의 막강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하지만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능가하는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상황은 180도 변했다.
도쿄전력의 연간 정전율이 연 4분으로 아무리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왔어도 방사성 물질 유출과 그로 인한 생활 터전 및 식품 오염, 전력 부족 등 너무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여기다 수조 엔에 이르는 배상액을 독자적으로 감당하지 못해 혈세까지 짜내야하는 만큼 도쿄전력은 공공의 적 신세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도쿄전력의 부채 비율은 300%에 육박, 이는 업계 평균치의 3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면 노후화한 원자로 폐기 및 새로운 원자로 건설, 대체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지만 민심을 잃은 현 상황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번 원전 사고는 도쿄전력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향후 경영 쇄신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