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지주사 성공못해, 조직문화 환골탈태해야, 국민적 신회 회복 필요
최악의 농협 전산장애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어 농협의 금융지주사 전환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가 금융권에서 커지고 있다. 관료적이고 배타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농협에서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 문화는 최고 경영자인 최원병 회장까지 속이고 전산장애 발생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거대 공룡 농협의 조직 혁신이 재차 필요한 시각이다.
하지만 관료적이면서도 배타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농협이 금융지주사가 됐을 때 고객 서비스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농협 안팎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농협 내부 관계자는 “농협 중앙회는 철저히 줄을 서는 관료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조직 문화에서 급반한 사태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부 지시에 복명복창하는 문화가 ‘일단 넘기고 보자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인사권이 회장에게 집중돼 있어 실수를 축소하고 가리는 문화도 자리잡고 있다.
실제 지난 12일 오후 5시 전산장애가 발생한 뒤 정보기술(IT)본부분사는 최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최 회장이 사태를 파악한 뒤에는 13일 영업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복구를 완료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번 전산장애로 553대의 서버 중 275개에서 데이터 일부가 삭제됐다. 정태민 IT본부분사 시스템부장은 “‘모든 시스템 파일 삭제’라는 심각한 명령이 내려져 피해가 확산되지 않게 전원을 모두 차단했다”고 말했다.
데이터가 삭제돼 복구에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을 알았음에도 만 12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다고 보고한 것이다.
13일 열린 ‘대국민 사과’에서도 농협의 관료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 회장은 수십명의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산시스템 담당 부장에게 “속이지 말고 확실하게 해. 거짓말 하면 의혹만 커져”라며 호통을 쳤다. 이에 정태민 정보기술(IT) 본부분사 부장은 “거짓말 한 것 없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큰 소리로 답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이후 고객에게 몸을 낮추는 금융기관, 조직 간 시너지를 내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농협의 혁신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순 농협 IT본부분사장은 “14일 안에는 복구를 모두 완료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또 다시 지켜지지 않았다.
농협의 반복된 거짓말로 고객들은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이 와중에 농협은 주요 거래 고객인 대기업만 우선적으로 챙겨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전산장애가 이어지자 KT&G, KT, 유진그룹 등 주거래 기업에 사과 및 현 상황을 신속히 전달했다.
이후에도 복구가 진행되는 과정을 신속히 알리며 거래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도왔다. 개인고객에게는 복구했다는 말만 되풀이해 공분을 산 것과는 상반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북 등 지역 공무원, 교사 등 대부분이 농협에 월급통장을 두고 있다”며 “이탈 가능성이 크지 않은 안정적인 수신을 가지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도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당초 농협은 외부 협력업체 노트북이 장애를 일으켰다며 원인을 협력업체 탓을 돌렸다. 하지만 이 노트북이 농협에서도 관리하는 것으로 드러나 내부 소행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혹은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수사가 끝난 뒤에나 풀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도 15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농협에 대한 공동검사권 발동 안건을 의결할 방침이다. 농협 전산장애로 한은의 지급결제 금융망도 일부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농협에겐 조직 문화란 소프트웨어부터 시스템이란 하드웨어까지 폭 넓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