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지역구 출마자를 비례대표로 이중등록하고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석패율제 논의가 활발하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지난주 석패율제 취지에 적극 공감을 표시해 내년 19대 총선부터 석패율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선관위는 지난 24일 토론회를 개최, 석패율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을 제안했다. 선관위는 의원정수,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비례대표 의석배분 방법은 현 제도를 유지하되, 현행법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이중출마를 금지한 조항을 없앴다.
석패율제의 장점은 영남에선 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선 한나라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다는 지역주의 완화에 있다.
선관위도 기본 취지에 맞도록 시도별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가 해당 시도 의석수 총수의 1/3에 미달하는 정당에만 적용토록 했다. 또 비례대표에 중복 추천된 후보자가 지역구에서 유효투표총수 대비 10% 이상 득표율을 얻은 때에만 당선되도록 했다. 이 안을 2008년 총선 결과 대입하면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최대 5명, 민주당은 영남에서 12명까지 당선자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영호남에 한정해 적용될 석패율제가 △거대양당 의석수만 더 늘리며 △비례대표 본래 취지인 직능대표성을 훼손하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대신 지역구 총수를 줄여야 하며△정치신인들의 등장을 막는 등 부작용도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군소야당들의 반발이 거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28일 석패율제와 관련해 “열세 지역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더 늘리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권력 나눠먹기에 불과하다”며 “직능대표성이 비례대표제의 근간인데 지역구 낙선자에게 이를 배정하는 것은 헌법 상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의원 총수 299석 가운데 비례대표는 54석이다. 여기서 석패율제로 당선될 비례대표 몫을 떼면 직능 대표성을 반영할 여지는 훨씬 줄어든다.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은 이상, 비례대표 수가 늘어나면 지역구를 줄여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골칫거리다. 지역구 축소는 지역의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해 정치권 대혼란이 예상된다.
석패율제로 현역 의원이나 당내 유력자들이 이중의 안전장치를 챙기는 반면 정치신인들의 문호는 좁아진다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은 지역대표와 비례대표를 1 대 1 규모로 운영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