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16일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대신 환율 하락을 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부총리는 이날 신한은행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개최한 `신한 프라이빗뱅크 그랜드 투자세미나 2011'에 강사로 나서 "금리를 잘 못 올리면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2003년 가계대출 파동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어 금리를 올릴 수도 올리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저라면 금리 대신 환율을 선택하겠다"며 "환율을 내리면 수출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높은 환율과 낮은 금리로 수출을 상당히 많이 했고 이익도 많아서 견딜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은 2007년 10월말 달러당 800원대로 하락하기도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1,000원 선을 넘어 급등했고 최근 1,130원대에서 등락 중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부총리는 "미국이 실물경제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화폐공급을 늘렸기 때문에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것이 우려되고 있다"며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재정위기를 겪는 유럽의 경우 재정적자를 늘리고 통화를 늘리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 잠재적으로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세계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일본 지진으로 인한 원자력 발전 차질 등으로 천연가스를 연료로 하는 발전 수요가 늘어나면 에너지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 부총리는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과 인도가 개발 인플레이션 기에 이미 들어갔다는 사실"이라며 "아랍 국가 문제와 중국 등 개발 인플레이션 수요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는 부담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살깎아먹기식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물급 행장들이 오고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덤비면서 국내 은행들이 무한 경쟁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며 "별로 먹을 것도 없는데 뜯어먹으려 벌떼처럼 덤벼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KT와 SK텔레콤 등 통신사들이 느닷없이 카드사업에 뛰어들면서 카드사업이 큰 경쟁에 직면하면 자칫 2003년처럼 소비자가 모든 부담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며 "산업은행장에 거물이 와서 위상에 걸맞게 행동을 하면서 또 한 번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저축은행 문제와 관련,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 정부가 최근에 와서 5천만원 이상은 책임지지 못한다거나 후순위채는 안고 가지 않겠다며 소비자가 비용을 판단하고 거래했어야 했다고 나오는 것이 현실"이라며 "금융위기 이후 건설회사나 조선사 구조조정을 미루면서 거래 저축은행의 문제가 쌓이자 더 끌고가지 못하고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대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본이 개선이라는 단어는 많이 써도 개혁이라는 말은 듣기 힘들정도로 조금씩 고쳐가는데 급급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열도를 재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에 유리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일본과 굉장히 어려운 경쟁을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신한금융 내분 사태와 관련, "신한금융 사태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신한은행 시스템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일본이 지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을 보면서 제 생각이 별로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작년 발생한 뜻밖의 일로 고객들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은행을 대표해 사과드린다"며 "오직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고객과 사회로부터 더욱 강하게 신뢰받은 은행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예상을 웃도는 300여 명의 PB 고객이 참석하면서 세미나실을 추가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