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전·철강서 한국과의 경쟁서 밀릴까 전전긍긍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긴장한 일본이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9일(현지시간) TPP에 대해 “관계국과 협의를 개시한다”는 기본 방침을 각의 결정했다.
유럽에 이어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진행하는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TPP를 서둘러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겸 사장은 “세계 무대에서 같은 조건이 아니면 경쟁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에 경종을 울렸다.
현재 미국의 승용차 수입 관세는 2.5%로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 관세가 없어져 한국 차 업계가 일본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일본은 과거 FTA 지연으로 한국과의 무역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일본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2004년 4월 한국과 칠레의 FTA가 발효되면서 6%의 관세가 철폐, 한·일의 칠레 자동차 수출이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일본과 칠레의 경제동반자협정(EPA)은 한국보다 3년여 늦은 2007년 9월에 발효됐다.
문제는 TPP 참여의 파급은 칠레와의 EPA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일본은 TPP 참여를 통해 미국과의 FTA 체결을 노리고 있다. 현재 미국이 참여하고 있는 TPP에 일본도 참여하게 되면 미국과의 FTA로 연결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미 FTA 체결로 일본 플랜트업계와 철강업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엔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관세에서도 일본이 밀리면 (한국과의) 경쟁력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수입 발전용 가스터빈에서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세계 최대로, 일본이 TPP에 참가하면 GE의 아성인 미국에서 관세가 철폐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신일본제철 등 일본 대형 철강사의 수출 비중은 몇 년전만 해도 30%대였으나 현재 45%로 확대됐다. 일본내 에서 생산되는 철강 대부분이 아시아로 수출되는 구도다.
그러나 포스코의 공세로 신일본제철조차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다.
일본철강연맹의 하야시다 에이지 회장은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TPP에 참여하지 못하면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FTA나 TPP 등이 체결되면 관세 장벽이 무너져 기업들은 글로벌 전략을 보다 유연하게 구축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LCD TV를 생산하는 소니의 경우 올 1분기(4~6월) 인도의 LCD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사이에 FTA가 발효되면서 인도에 대한 수출 관세가 10%에서 7.5%로 낮아진 덕분이다.
경제효과도 만만치않다. 일본 내각부는 일본이 TPP에 참여했을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2008년도에 비해 0.48~0.65%(2.4조~3.2조엔)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농업 부문의 타격이 문제. 농림수산성은 주요 농산물 관세를 철폐하면 GDP의 8조4000억엔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