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다퉈 채권 매입으로 실세금리 요동...외환시장 혼란 확산
글로벌 공조가 사라졌다. 주요국의 정책갈등이 금융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자국 이익을 위한 '이기적' 결정이 정책 기조로 자리잡으면서 금융시장의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환율전쟁이 반영하듯 인위적인 경제정책과 압박이 글로벌 자본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르면 11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펼 전망이다. 시장이 예상하는 규모는 1조달러(약 1112조원)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자금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센터(CEBR)는 지난 15일
(현지시간) BOE가 긴급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1600억달러를 공급할 것으로 내다봤다.
침체를 이어가는 영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BOE는 현재 0.5%로 사상 최저 수준인 기준금리를 2012년 후반까지 동결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행보 역시 긴박하다. 쟝-끌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경기부양을 위한 공격적인 움직임을 변경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트리셰 총재는 이날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하라는 일부 인사의 요구에 대해 "22명의 중앙은행 회원이 압도적으로 채권 매입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악셀 베버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 등 ECB의 대표적 매파 세력은 최근 채권 매입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매입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ECB는 유로존 부채 위기가 고조된 지난 5월 시작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첫 주에만 165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사들인 뒤 매주 적게는 수억유로에서 많게는 수십억유로 규모를 매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각국 중앙은행의 행보가 시장에 혼란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채권을 사들이고 환율절하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외환시장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갯속을 걷고 있다.
달러는 유로에 대해 1.40달러선을 넘나들고 있으며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15년래 최고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호주 달러는 미국 달러와 가치가 같아지는 '패리티(parity)' 시대에 들어섰다. 이는 호주가 외환시장을 개방한 지 2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상승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채권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연준의 양적완화 전망으로 미국의 10년 뒤 인플레 기대치가 10월 초 1.80%에서 최근 2.17%로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인플레에 민감한 30년물 국채 금리 역시 출렁이면서 10년물 국채와의 금리 스프레드는 지난주 1.45%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정책 당국자들 역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지난 주말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컨퍼런스에서 양적완화 조치가 쉽지 않음을 인정했다.
그는 "디플레 위험과 고용시장 악화가 이어질 경우 추가 조치가 있을 것"이라면서 "자산 매입에 대한 경험이 적어 매입 규모와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으로 미국증시 주요 지수는 등락이 엇갈리는 혼조세로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각국의 부양책이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알란 러쉬킨 도이치방크 투자전략가는 "양적완화 조치의 작동은 쉽지 않다"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채권 금리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하더라도 금리가 너무 낮다면 시장에는 인플레에 대해 공포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