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저지 실패로 물귀신 작전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이례적으로 한국과 중국을 지목해 외환시장 개입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간 총리는 13일(현지시간) 열린 중의원 예산 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특정국이 자기 나라의 통화가치만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도하는 것은 주요 20개국(G20)의 협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중국도 G20이 정한 범위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줬으면 좋겠다”며 “일본도 환율개입을 하고 있어서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일본의) 입장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간 총리가 특정 국가를 지목해 외환시장 개입의 문제성을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 총리는 그러나 엔화 값 상승 억제를 위한 일본 재무성의 시장개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한국에 의장국으로서 책임을 추궁하겠다고까지 말했다.
일본은 지난달 15일 6년여 만에 환율개입을 단행, 하루 2조엔 가량의 엔화를 풀어 달러를 사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엔화 가치는 달러당 70엔대 진입에 바짝 다가섰고 달러화와 한국 원화, 중국 위안화 등 경쟁국 통화의 절상을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수세에 몰린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과 중국을 지목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제 사회에서 ‘혼자만 살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자 중국뿐 아니라 G20 의장국인 한국까지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G20 의장국의 책임까지 운운하며 한국을 공격한 것이다.
또 엔화 강세로 수출시장에서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일본 기업의 목소리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간 총리는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경쟁력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발언 무대가 자국 내 의회였던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인 발언에 불과하지만 과도한 엔화 강세로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있는 현실에 직면한 간 총리의 절박한 심정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간 총리의 발언으로 한국은 미국ㆍ일본ㆍ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중국·브라질·태국 등 신흥국의 싸움으로 비화된 환율전쟁에 얼떨결에 휘말린 형국이다.
가뜩이나 격화되고 있는 환율전쟁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회원국간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G20 의장국이 당사자가 돼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는 위기를 맞은 셈이다.
트레이더들은 “원화는 지난 3개월간 달러에 대해 8% 가량 올랐다”며 “한국은행은 원화 절하를 위해 개입해왔다”고 전했다.
한국은 원화 절하를 위한 개입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시장의 변동성은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간 총리의 발언에 심기가 불편하기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추이톈카이 중국 외교부 부장관은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환율전쟁을 피하기 위해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중국 역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모든 G20 회원국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는 중국 위안화가 과소 평가돼 있다며 절상을 촉구하고 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위안화 절상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글로벌 환율전쟁에 대해서는 “리스크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