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반격④] 기름값 내려라...내린다고 만사형통 아니다

입력 2010-04-12 07:00수정 2010-04-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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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투자 여력 상실로 국제 경쟁력 약화 초래 우려

"최근까지 내놓은 정부의 정책들이 시장에선 왜 실효가 없었는지 곱씹어볼 때가 됐습니다." 기름값 인하를 목표로 추진했던 지난 2년간의 정부정책을 두고 한 정유사 관계의 평가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물가 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기름값을 잡기 위해 내놓았던 다양한 정책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출범 후 주유소 상표표시제(폴사인제) 폐지와 대형마트의 주유소 진출 허용, 정유사별 주유소 공급가격 공개 등 기름값 인하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력을 비웃듯 기름값은 널뛰기를 계속하더니 최근엔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주유소 공급가격 공개는 영업비밀 침해 논란으로 이어져 정부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등 갈등만 키웠다.

특히 잇따라 꺼낸 카드의 효과가 신통치 않자 정부는 유통단계별 가격공개 카드까지 꺼냈다. 대리점이나 직영점 등 주유소에 공급되기 전 유통망에 대해서도 가격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높은 기름값이 정유사들의 유통 마진 때문에 발생한다'는 정부의 판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대목에서 정유업계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소비자들을 위한 정부의 기름값 인하 정책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면서도 단순히 정유사만 범인으로 몰아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름값 인하 정책이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ℓ당 13.1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2008년 연간기준인 ℓ당 20원 수준에도 한참 못미치는 것이다.

정유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와 각 제품의 국제시세, 환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 방향과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뻔하게 적자 날 상황을 알고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결국 생존을 위해 막대한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 정유업계의 입장에선 이 같은 낮은 수익률로는 미래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로 일부 정유사들은 고도화시설 공사를 연기하는 등 투자 지연으로 이어졌다.

정유사와 같은 기업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오히려 지역경제와 주유소 자영업자들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골목 상권'을 초토화시킨 것처럼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유소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 1만2000여 주유소 중 지난 2008년 268곳의 주유소가 휴업했으며 101곳의 주유소도 폐업했다. 2009년 역시 290곳이 휴업을, 109곳이 폐업을 선택했다. 올해 2월 현재 285곳의 주유소가 휴업을, 30곳이 폐업을 선택하는 등 빠르게 붕괴되는 상황이다.

이는 지역경제의 기반 붕괴와도 연결된다. 중소 자영주유소가 거둔 매출은 기반을 둔 지역의 세수증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대형마트들이 지역에서 거둔 매출은 본사가 있는 서울로 올라가 '동네 돈'만 유출될 뿐 지역경제에 기여는 극히 미약하다.

대형마트를 통한 기름값 인하 효과도 논란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대형마트 주유소를 도입한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보더라도 중소 자영주유소들이 줄도산 한 후에 대형마트들이 가격 정상화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착 정부가 내세웠던 기름값 인하 효과보다는 자영주유소들만 도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정부가 시장의 자정작용에 맞기기보다는 직접적으로 개입, 기업과 지역경제를 흔들면서 추진했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시민은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좋은 의도인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보면 그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무조건 인하하겠다는 것보다 장기간 기름값이 인상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좀 더 다양한 방안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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