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니 속사정도 깊다. 기아차는 "단어 연상과 시각 추적(eye-tracking) 등을 감안해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여기에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장치인 'fMRI'까지 측정해 뇌반응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꽤 과학적이기는 하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추억속의 차를 끄집어내고 있다. 바로 K303이다. 이제는 잊혀진 이름 K303은 한때 현대차에 맞설 수 있는 기아산업(당시는 이렇게 불렀다)의 유일한 차였다.
1974년 기아산업은 일본 마쓰다를 부지런히 오가며 소형차 '파밀리아'의 기술을 배워왔다. 작고 앙증맞은 첫 차에게 '브리샤'라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이름도 붙였다.
비록 일본차를 밑그림으로 개발했으나 국산화율은 현대차를 앞섰다. 꾸준히 내수부품 비율을 늘려 이 비율은 80%를 넘겼다. 다만 맹꽁이같던 겉모습은 밉상이었다. 이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후속모델 K303이다.
K303은 기아산업의 자존심이었다. 프론트 그릴을 뾰족하게 다듬어 '맹꽁이'같은 브리샤와 차별을 두었고 한결 날카로웠다. 당시 기준으로 볼륨감 넘치는 근육질(?) 보디는 첨단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쓰다 파밀리아와 똑같았던 브리샤와 달리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다듬어 나름의 색깔도 지녔었다.
그러나 자존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구겨야 했다. 경쟁모델에 밀려 판매 하락이 이어진 것도 아니다. 기술력이 없어 차에 문제가 생긴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1970년대 말 12.12 사태 후 군부정권은 새한(이후 대우차)에게 중형차를 전담케 했다. 현대차에게는 소형차 특권을 주었다. 기아산업는 상용차를 담당케했고 거화(이후 동아를 거쳐 쌍용차가 된다)에게는 사륜구동과 특장차를 전문으로 개발하게 했다. 이 모든게 공업합리화 조치였다.
이후 공업합리화 조치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던 기아산업은 1986년 오래토록 참았던 빗장을 풀고 역사적인 소형차 '프라이드'를 내놓는다. 일본 마쓰다가 개발해 한국 기아산업이 생산하고 판매는 미국 포드가 도맡았다. 그래서 같은 차를 두고 마쓰다 파밀리아와 기아 프라이드 그리고 포드 페스티바로 이름을 달리해 전 세계를 누볐다.
지금은 국내 수입차업계로 자리를 옮긴 예전 기아산업의 상품기획팀장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기억하시네요. 맞아요 K303이 있었습니다. 코드네임이요? 그때는 그런것 없었어요. 그냥 제품 품번을 부르듯 불렀거든요. 브리샤 후속으로 디자인을 개발할 때였는데 K는 기아였습니다. 301과 302 그리고 303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세번째 디자인이 채택됐어요. 그렇게 K303이 된 것이지요."
이제 머리에 흰서리가 가득 내려앉은 그는 그렇게 잠시잠깐 옛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K303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아무리 과학적인 '자기공명을 통한 네이밍 법칙'을 이야기해도 쉽게 받아 들여질리 없다. 우리에게 K7이나 K5는 그저 K303의 연장선으로 보일 뿐이다.
요즘 차 이름을 두고 "그 옛날 K303과 같은 맥락 아니냐"고 물었을 때 지금 현대기아차 직원들은 발끈할지 모른다.
그들이 과학적인 차 이름을 자랑하는 사이, K303을 기억하는 '올드보이'들 혹은 그 시절 기아맨들은 여전히 우리 뇌릿속의 K303을 추억할 뿐이다. 이미 그 옛날 그 자리에 기아산업의 자존심 'K303'이 존재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