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열지 않고 들여오는 의무수입 때문… 관세화 주장 커져
남아도는 쌀을 수출하면 될텐데 왜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을까?
12일 농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자 “쌀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면서 “간단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먼저 떡볶이, 막걸리 등 가공 쌀을 대부분 수입산 쌀로 제조하고 있는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수입 쌀은 모두 정부 비축분이다. 우리나라는 WTO 협상을 통해 쌀시장을 개방 않는 대신 일정 물량을 의무 수입하고 있다.
1995년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쌀 시장을 열지 못하고 관세 유예화를 택하면서 의무적으로 정부가 곡물 시장 입찰을 통해 쌀을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첫 해 WTO 합의에 따른 최소시장접근(MMA) 물량, 즉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의 양은 2만5000t에 불과 했다.
그러나 매년 의무 수입물량이 2만t씩 늘어나면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1차 의무화 기간이 지나고 2005년부터 2014년까지 2차 의무화 기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에는 의무 수입량이 32만7000t으로 불어났다. 이는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 491만6000t의 6.7%에 달하는 양이다.
현재 수입된 쌀은 가격이 국내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떡볶이, 막걸리 등 쌀 가공 제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수출에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도 관세화유예 때문이다. 쌀 시장의 문을 닫아 놓고서 정부가 수출에 나서면 세계 시장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쌀 수입국이지만 정부가 적극 나서 쌀 수출국이 되면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과정에서 농업 선진국으로 인식이 돼 매년 수백t의 의무 수입 물량이 부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쌀은 우리나라 주식이며 농가 주 소득원으로 매우 민감한 상품”이라면서 “쌀시장 관세화 유예를 결정했던 1995년은 국내와 국제 가격 사이의 가격차가 지금보다 더 커 시장을 개방할 경우 국내 농업에 큰 타격이 예상됐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에 연 40만t 가량을 지원하던 것을 중단하고 작황이 좋아지면서 공급 과잉 상태로 가격이 떨어지고 관세화할 경우에도 수입산과 가격 차이가 줄게 됐다.
국제 쌀 가격에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에도 국내산 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전망으로 쌀 시장이 열려도 수입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때문에 차라리 쌀시장을 개방하고 MMA 물량이 올해분에서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시장을 관세화하는 방향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농업계가 합의를 통해 이를 요구할 경우에나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관세화의 경우 쌀 수출이 늘면서 DDA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쌀을 수출하는 농업선진국으로 인식될 경우 수입의무물량이 MMA에 더해 수백만t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농업정책학회장인 한두봉 고려대 교수는 “관세화 여부와 상관 없이 DDA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현재 재고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의무수입물량을 줄이기 위해 2015년 관세화가 계획돼 있는 일정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현재 쌀 재고는 소비량의 20%에 달하고 있는데 쌀의 적정 재고를 두달치인 15~17%로 볼 때 30%를 넘어가게 되면 쌀값이 폭락하게 된다”면서 “이전 정부에서 남아돌던 쌀을 쉽게 북한에 주면서 쌀 가공식품 개발이나 식생활 교육 등 소비진작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 현재 과잉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투데이=이한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