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 필 실효성 논란 '점입가경'

입력 2009-11-17 11:28수정 2009-11-1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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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의문 제기 잇따라.."도입 필요성 약해"

정부가 상법 개정을 통해 도입하려는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제도 도입과 관련한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위기에 처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싼값으로 신주를 발행해 우호지분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경영권 보호장치인 '포이즌 필' 제도가 한국의 경제 현실에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지난 9일 적대적 M&A 방어 수단에 관한 상법 일부 개정안과 관련해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포이즌 필 제도의 주요 뼈대가 드러났지만 실제로 도입 필요성과 타당성이 상당히 빈약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또한 학계와 시민단체 등이 그동안 제기했던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와 소액주주의 권리 침해 같은 근본적인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다는 점도 실효성 논란에 불을 당겼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이러한 분위기 속 정부의 포이즌 필 도입과 관련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무부가 제도 도입을 위해 내세운 논리에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17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정부가 상법 개정안에 포이즌 필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 제도 도입의 논리가 정당하지 않다며 법무부가 공청회를 통해 제시한 포이즌 필 제도의 도입 배경에 제도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세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법무부가 현재 내세우고 있는 사회적 효율 증진 및 대상회사 주주의 권익보호라는 도입 논리가 한국적 현실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운을 뗐다.

권 연구위원은 "우선 정부가 사회 전체적으로 과도한 적대적 인수 시도로 인해 사회적 비효율성이 유발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특히, 대기업의 경우 적대적 M&A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사회적 효율성 관점에서 적대적 인수를 위한 과도한 탐색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권 연구위원은 "정부가 적대적 M&A 공격은 쉬운 반면 강력한 M&A 방어 수단이 적다는 점을 근거로 포이즌 필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적대적 M&A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비공식적인 강력한 방어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권 연구위원은 "재벌 소유와 순환 출자 등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한국내 대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에 나서려는 시도 자체가 매우 어렵다"며 "현 상황에서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추가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시중 증권사의 한 지주회사 담당 연구원 역시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가 빈발하는데도 기업이 마땅한 대응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면 경영권 보호 장치의 필요성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지만, 그동안 적대적 M&A에 나선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한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원은 "무엇보다 재벌 총수나 지배주주의 전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 수 있고 경영 실패로 인한 경영권 상실 위기감이 사라지게 돼 시장경제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이즌 필 도입으로 인한 경영권 안정으로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문화가 살아날 수도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려 한국 경제에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포이즌 필 도입에 따른 투자 활성화 논리도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포이즌 필 도입을 투자 활성화와 연결짓는 정부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

좋은기업지배연구소내 한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유보금을 쌓아놓고도 투자에 소극적인 주된 이유는 경기와 수익모델 등 제반 투자 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며 "경영권 방어에 애를 먹어 투자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는 근본적으로 투자 기회의 수익성과 위험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적어도 대기업의 경우 국내외 시장을 통해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경영권 방어비용을 줄여 투자 재원을 마련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본시장연구원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 기회가 없는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M&A 방어비용이 감소해 기업내 여유 자금이 증가할 경우 불필요한 투자가 실행되는 등 여유 자금으로 인한 대리인 문제 부작용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연구위원은 "따라서 포이즌 필이 굳이 도입해야 한다면 이사회의 독립성과 책임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보다 구체적인 발행 기준과 지침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포이즌필을 정관에 도입한 경우에도 3년 정도의 일몰조항을 둬 주주총회에서 그 적절성을 정기적으로 심사토록 하는 한편 근본적으로 폭넓은 기업금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신주인수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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