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용오 회장, 그는 누구인가?

입력 2009-11-0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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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ㆍ인화의 경영철학 실천...형제의난 으로 아픔 겪기도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사진,현 성지건설 회장)이 4일 별세했다. 향년 72세.

경기고등학교와 미국 뉴욕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한 박 전 회장은 1965년 두산산업주식회사에 입사하면서 두산그룹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에 두산산업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박 회장은 1984년 두산그룹 부회장을 거쳐 1996년 회장에 취임해 2년여 동안 두산그룹을 이끌었다.

이 기간에 박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 총협회 부회장을 맡아 수행하는 등 한국 경제계에도 헌신했다.

야구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던 박 회장은 1991년 OB베어스 구단주로 프로야구 구단을 직접 운영했으며, 1998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맡기도 했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 회장 시절‘공감경영’,‘인화경영’으로 임직원들의 신망을 받았다. 당시 박 회장은“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임직원의 공감대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도 임직원들의 공감대와 희생이 없다면 의미도 없고, 실제 사업의 성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회장은 경영진에 대해 필요 이상의 간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마디로‘믿고 맡기는 스타일’의 경영을 했던 것이다. 두산그룹이 그룹의 핵심사업을 100여년 동안 영위해 온 소비재 분야에서 중공업 분야로 옮기고 난 후에도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데에는 계열사 경영진을 믿고 맡기는 박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다.

실례로 박 회장은 한국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할 때 실무팀에게“경쟁사 눈치를 보지 말고 인수가격을 적어 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회사의 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검토한 경영진의 판단에 그만큼 신뢰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토대로 두산그룹은 사업의 핵심역량을 중공업 분야로 전환하게 되고, 담수플랜트 분야 1위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정착이 가능했다.

하지만 박 회장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형제의 난으로 알려진 파동 끝에 두산가에서 제명당한 것과 함께 최근에는 성지건설의 부사장으로 있는 둘째 아들이 주가조작으로 구속되는 등 가족사의 시련을 겪어 왔다.

두산그룹이 장례를 그룹에서 책임지고 맡기로 하면서 박 회장의 별세가 두산가의 화해를 이끄는 촉매제로 작용하게 된다면, 박 회장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경영철학이었던 ‘인화’를 가족사에 재현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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