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왜 우리만 리스크 떠안냐"..전시행정 전락 우려도 나와
정책금융공사(이하 KoFC)가 최근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개시, 연간 5000억원 이상을 대출해 주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온-렌딩(on-lending)' 방식을 채택함에 따라 이 같은 대출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온-렌딩은 정부가 기술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민간은행 등에 위탁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대출 지원 방식의 일종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부분으로는 무엇보다 KoFC가 민간은행에 중소기업 대출 자금을 빌려주면 민간은행이 여신 심사를 통해 지원대상 기업을 골라 대출해 주는 온-렌딩의 경우 해당 여신에 대한 리스크를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KoFC가 본래 담당하는 정책 금융을 민간은행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은행과 정부가 리스크를 각각 적절히 배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로 인해 은행들의 중기 대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당초 기대했던 정책 실효성 논란이 점차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온-렌딩 방식의 중소기업 대출 지원은 심사와 지원 주체가 달라 KoFC와 은행간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발생할 소지도 남아 있다는 점에서 현재 지적 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지난 5월 4일 한국정책지식센터 주최로 서울대 정책대학원에서 개최됐던 '산업은행 민영화의 현주소와 극복 과제'라는 정책 포럼에서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KoFC 출범 전 정부가 시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시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온-렌딩 방식의 중소기업 대출 지원은 심사와 지원 주체가 달라 정부와 은행간 심각한 대리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우려, "민영화되기 이전 산업은행이 이 보완하려다 보면 당초 분리를 전제로 생각했던 기본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KoFC측은 이와 관련, 온-렌딩 방식외에도 직접대출, 보증 등의 중기 지원도 병행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지만 부실 중기 대출에 따른 리스크 부담 우려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KoFC가 현재 주장하는 이른바 '시장친화적' 온-렌딩 방식으로는 현재의 자금 경색,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금융 양극화를 줄이기보다는 되려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어 우려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자본을 투입해도 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직접 지원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 은행 더러 수익을 따져 중기 대출에 나서라는 건, 정부가 중소기업 금융을 사실상 포기한 게 아닌 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KoFC가 이번에 채택한 온-렌딩 중기 대출 방식이 정부가 민간금융기관에 자금을 위탁해 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독일식 금융지원 방식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한국적 금융시장 여건과 달라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온-렌딩 중기 대출 지원에 은행이 고스란히 리스크 위험을 떠 안는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만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를 테면 정말 필요한 중소기업에 제대로 유동성 공급이 이뤄졌는지, 당국과 은행의 감시 권한을 강화하거나 온-렌딩과 더불어 다양한 중기 지원용 금융상품 구축으로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으로 기업금융에 나름의 강점을 가진 중기 금융정책을 바탕으로 은행 건전성과 중기대출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KoFC가 한 번에 잡으려는 시도는 이해가지만 은행권의 동의는 커녕 공감대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칫 전시 행정으로 전락할까 심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