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비용과 편익' 관점에서 본 한가지 해석
그런데 요즘은, ‘한 증권사 ‘매수’추천 보고서를 보고 주식을 샀는데 왜 몇 개월째 주가가 움직이지를 않느냐’, ‘왜 증권사에는 팔라는 말은 없고 온통 주식을 사라는 보고서만 있냐’ 등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마디로 투자자들의 의문점은 ‘왜 증권사 기업분석자료에는 ‘매도’ 보다는 ‘매수’ 추천이 많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의 현상은 아니지만 이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의 기업분석자료중 특정기업의 주식을 팔라고 추천하는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목표주가’를 조금 낮추던가, 현 상태에서 주식을 ‘보유’하라는 보고서만 나와도 해당 기업에 상당히 부정적인 분석으로 받아들여 진다.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온통 ‘매수’ 추천 보고서만 있으니, 이를 믿고 투자했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애널리스트나 증권사를 원망하기 일쑤다.
그럼 왜 증권사 기업분석자료에는 ‘매도’ 추천 보고서가 없는 것 인가.
미국 코넬대학교 경제학과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 교수는 얼마 전 그의 저서 ‘Economic Naturalist’ 에서 이 현상을 ‘비용과 편익(Cost and Benefit)’이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0명의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있다고 하자. 이들은 분석 대상인 상장기업을 방문해 꼼꼼히 회사의 요조조모를 따져 보고 앞으로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를 예상한다.
그런데 분석대상 기업은 향후 증자를 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또는 회사 자체적으로 주식 투자에 나서거나 하는 등의 경우로 증권사의 잠재고객이다.
따라서 애널리스트들은 왠만하면 기업에 부정적인 분석보고서를 내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게된다. ‘매도’ 추천을 하려면 차라리 분석보고서를 내지 않고 지나갈 버릴 수도 있다.
또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애널리스트들은 자신의 투자의견을 내놓기 전에 다른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은 어떨까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보고서가 잘못 됐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 따져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애널리스트들도 ‘인지상정’으로 이왕이면 다른 애널리스트들과 비슷한 분석보고서를 내고 싶어 한다.
10명의 애널리스트가 모두 ‘매수’추천을 했는데, 기업의 주가가 떨어졌다면 10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모두 함께 실수를 한 것이 되므로 한 개인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반대로 1~2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매도’ 추천을 내고 나머지 애널리스트들이 ‘매수’를 권했는데 주가가 올랐다면, ‘매도’를 추천한 애널리스트는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다른 애널리스트들의 주가분석이 정확했는데, 자신의 분석이 틀린 것이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애널리스트들로서는 다른 분석가들이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매매(매수 또는 매도)전략’을 따르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결국, 애널리스트의 입장에서는 ‘매도’ 보다는 ‘매수’ 보고서를 내는 것이 자신의 분석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던, 틀리던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팅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비용(상사의 꾸지람, 자신의 경력상의 오점, 투자자들의 원성 등)은 최소화하고 편익(에널리스트로서의 자신의 명성, 향후 연봉협상시 유리한 입장 등)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전략인 셈이다.
따라서, 주식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경험 많은 투자자라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 보고서를 100% 그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남이야 뭐라던 자신의 소신대로 기업분석 보고서를 내는 애널리스트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증시가 변동성이 너무 심하고 예측불허의 장세가 지속되니 투자자들로서는 ‘쪽집게’ 같은 증권사 분석보고서를 더욱 원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증권사 기업분석 보고서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쓰여 있는가.
“본 자료는 투자판단에 참고 자료일 뿐….정확성이나 완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따라서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들의 판단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자면, 주식투자자들은 왜 '매수' 추천 보고서만 있는가,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는지 남의 의견을 묻기 보다 각자 주식투자때 소요되는 개인의 비용(투자금액, 시간, 열정 등)과 편익(수익)을 따져 보면서 소신대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