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금융위 압력에 힘 못쓰는 이성태 총재

입력 2009-10-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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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 예고 정부 반대로 시장 혼란만...고유권한 '무색'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파워에 밀려 고유권한인 금리 카드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달 연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풍겼지만 한 달 만에 시장의 오해(?)라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시장 혼란만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성태 한은 총재가 재정부와 금융위의 압력에 고유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달 10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2.00%로 동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시장이 걱정스럽다. 현재의 금융완화기조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금리를 약간 올린다고 해서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금리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언급했다.

평소 차분하고 신중하기로 알려진 이 총재였지만 유독 이날만큼은 격앙되다 못해 다소 흥분한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윤증현 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곧바로 반대 입장을 내놨다.

윤 장관은 “적극적 재정정책에서 거시정책은 재정지출 확대, 감세정책 그리고 금융완화가 포괄된 얘기”라면서 “금리인상에 관해 정부로서는 아직 그런 단계가 절대 아니라는 게 확고한 입장”이라고 금리인상 반대론을 분명히 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가 중요하다”며 한은의 금리 인상 움직임을 견제했다.

결국 이 총재는 한 달 만인 10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9월의 발언은 당장 금리를 올리겠다는 신호라기보다는 금리인상이 아주 먼 훗날 일어날 일은 아니라는 의미였다”며 “(하지만) 언론과 시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고 입장을 바꿨다.

당시 이 총재의 발언 이후 채권이 요동하는 등 시장은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시장의 오해(?)로 치부하는 일명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다.

정부와 한은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금리인상의 파급효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은 시장금리를 자극하고 이는 대출금리를 끌어올려 가계와 기업의 자산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환율 하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

윤 장관은 “1990년대 일본이 조기에 출구전략을 펼치는 우를 범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으며, 이명박 대통령 역시 “과거의 예를 보면 위기에서 벗어날 때 너무 빨리 출구전략을 썼기 때문에 다시 위기를 맞이한 경험이 있다”며 시기상조론에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인상에 대한 걱정이 크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물가 인상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시장이 소폭 내려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변수가 남아있고 특히 최근 3분기 국내총생산(GDP)가 기대 이상으로 상승하고 소비심리지수도 높은 수준에 있어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쳤다.

또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면서 다음 총재에게 저금리 정책으로 인수인계 하는 것도 부담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총재가 재정부와 금융위 압박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이 총재의 정책이 제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기준금리 카드가 한은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반대하면 어쩔수 없이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며 “결국 이 총재는 섣부른 발언으로 시장의 혼란만 불러일으킨 전례를 남기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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