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시장은 금감원에 여전히 차가웠다

입력 2009-09-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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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전날 금감원 비전 선포 1주년 기념사를 통해 금융감독기관과 피감기관의 관계를 빗댄 '신사적 수평관계' 발언을 놓고 금융시장 참가자들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김종창 원장은 전날 "금감원이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려면 금감원의 금융회사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자신의 조직을 향해 "권위주의를 버리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김 원장의 이러한 발언은 작년 3월 취임 후 그동안 수차례 강조했던 '갑-을 관계'에 기초한 금감원의 검사현장의 관행이 여전할 뿐 아니라 시장친화적 감독기관으로 거듭나려는 실천 역시 부족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시장은 금융감독 업무의 특성상 친절하고 감성에 기반한 조직 문화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주를 이뤘다.

감독당국 직원들 의식체계의 획기적인 변화는 여전히 '기대 난망'이고 사고와 업무 처리에 있어 경직되고 정형화된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피감기관과의 수평적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융회사들에 금융감독 당국의 존재는 두려움이자 불편함 그 자체다. 이들이 변한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해마다 이뤄지는 금융기관 정기감사에 특별감사, 이슈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금감원 직원들에 당했던(?) 하인 취급은 여의도 금융계 사람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막강한 제재 권한으로 경영진의 임면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실상의 '금융 검찰'인데 김 원장 발언 약발이 얼마나 먹힐 지 의문이다. 기대도 안 한다."

이는 기자가 김 원장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당일 저녁 증권업계 몇몇 인사들과 식사한 자리에서 쏟아졌던 말이다.

김 원장의 입에서 나온 '갑-을 관계의 수평적 신사관계' 발언의 주된 배경이 됐던 딜로이트 설문조사 결과를 눈과 입으로 기자가 직접 확인한 셈이다.

딜로이트는 금감원의 의뢰로 최근 두 달간 금융회사 임원 40여명과 상장기업 및 금융계 종사자 약 600여명을 대상으로 '금감원에 대한 외부 인식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감원에 대한 인식의 절반 이상이 고압적이거나, 고압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는 등의 답변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김 원장이 작년 3월 취임한 이후 보였던 금감원 검사관행 실태 현장 지도를 위한 방문과 직후 이뤄진 금감원 조직개편 등 일련의 행보가 아무런 변화와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금융회사를 검사 및 감독하는 대가로 시중 금융기관으로부터 일정 부분의 돈을 받는 '반민반관' 기관인 금감원.

전문 기관으로서 금융시장 안정과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본연의 취지가 금감원장의 이번 비전 선포 1주년 기념사로 당장 살아나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금융회사와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감독 서비스 기관이 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금감원의 정식 영어 명칭 'The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 가운데 이 마지막 'S'를 금감원은 염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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