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시선] 유료방송 방통위 이관, 失이 큰 이유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쟁으로 얼룩진 방통위 유명무실
유료방송은 규제보다 육성이 중요
차라리 독임제기구로 통합 고려를

새 정부에서 그동안 많이 지적돼 왔던 방송 규제 체제가 개편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지상파방송·종합편성·보도채널처럼 높은 공익성을 요구받는 방송 매체와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같은 유료방송으로 나누어,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규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양분화된 규제 체제는 방송 정책에 있어 적지 않은 혼선과 비효율성을 야기하고 있다. 원천적으로 무료방송과 유료방송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공적 책무에 있어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이지, 모든 방송 매체는 사실상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13년 창조과학부라는 생뚱맞은 부처를 만들어 유료방송을 별도로 규제하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방송·통신이 융합된 온라인 매체들이 방송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면서 사실상 정책 부재 상태에 빠져버렸다. 기술적으로는 통신 서비스지만 시장에서는 유료방송과 경쟁하고 있어 규제 주체가 불분명해진 것이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유튜브·틱톡 같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어떤 법적 대응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 내용규제를 할 수 없는 통신서비스이고, 또 현실적으로 규제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 규제 기구가 양분화되어 있다는 것이 더 큰 원인이다.

이처럼 미디어 융합에 맞지 않는 아날로그식 규제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야 추천 위원들로 구성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쟁 때문에 사실상 정책·규제 기능이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신 시장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으로 통신 정책이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비아냥 소리가 헛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효율적인 방송·통신 정책을 위해 규제 기구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위원회 형태의 방송·통신 규제 기구는 한국의 정치·관료문화에서 장점보다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정치적 이해득실과 한번 만든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관료주의 속성상 기구 통합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OTT와 유료방송 규제만이라도 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구 통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온 고육지책인 것 같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로 유료방송 규제 권한을 이관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첫째,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형해화된 기구라는 점이다.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위원회 속성상 정쟁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책적 합리성이나 전문성을 고사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정책 자체가 실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1년 넘게 여야 갈등으로 위원 구성이 안돼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 있었다. 자칫 유료방송 정책이나 규제마저 실종될 수도 있다.

둘째,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에 방점을 둔 기구다. 공영방송이나 종합편성·보도채널을 규율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도 사회적 영향력 같은 공익적 규제를 위해서다. 반면 유료방송 정책은 규제보다 지원과 경쟁 환경 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특히 콘텐츠 산업 육성과 글로벌 OTT에 대응하기 위한 지원 정책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방송통신위원회로 유료방송 규제를 이관하는 것은 산업과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

전체적인 기구 통합이 아니라 유료방송 같은 몇 개 규제 권한만 이관하는 것은 방송정책 아니 전체 미디어 정책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 방송통신위원회로 유료 방송 정책과 규제를 이관하게 되면 자칫 방송 영역을 넘어 디지털 융합 정책까지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할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180명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가진 집권 여당이라면, 학계나 산업계 모두가 주장하는 독임제 기구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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