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가계빚 해법, 이번엔 진짜 다를까

“가계부채는 감기처럼 한번 앓고 끝나는 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뇨처럼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과 같죠.”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이 발언은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구조적 문제임을 짚고 있다. 당장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방치하면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 시스템의 뇌관으로 작용하며, 경기 하강기에는 실물경제를 옥죄는 족쇄가 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당뇨병을 관리하듯, 가계부채 역시 지속적이고 정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말은 쉽다. 지난 30여 년간 정권이 바뀔때마다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구호를 반복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부채 증가였다. 그야말로 난제다.

이번 정부 역시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나섰다. 다만 이번엔 자금의 ‘흐름’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큰 그림을 제시했다. 부동산 중심의 자금 구조에서 산업·자본시장 중심으로 체질을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가계자산 중 78.6%가 부동산에 몰려 있다고 한다. 미국(28.5%)·일본(37%)·영국(46.2%)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과도한 수준이다. 자금이 비생산적인 자산에 쏠리면서 중소기업 자금난, 금융 불안정성, 성장률 둔화 등 구조적 병목이 지속돼 왔다. 부동산으로의 자금 집중은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에 낮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해온 정책 배경과도 맞물려 있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먼저 정부는 금융회사가 가계·부동산 부문에 과도한 자금을 공급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규제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수위 역할을 대신하는 국정기획위원회는 부문별 경기대응완충자본(SCCyB)과 시스템리스크 완충자본(sSyRB) 등 새로운 자본 규제 장치를 검토 중이다. 이는 가계·부동산 부문 대출에 대해 금융사가 더 많은 자기자본을 쌓도록 유도해 자금 쏠림을 완화하는 장치다.

또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은행의 평균 주담대 위험가중치는 약 15% 수준인데, 홍콩이나 스웨덴 등은 이를 25% 이상으로 높게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국정기획위는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해 은행이 안정적인 주택대출에만 머물지 않고 기업대출 등 생산적 영역으로 자금을 돌릴 수 있도록 자본규제 기반의 유인 구조를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정책 방향은 맞더라도 실행력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금융회사가 실제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기업대출로 방향을 바꾸도록 만들려면, 정책 유인과 시장 인프라가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 자칫하면 부동산 대출은 막히고, 생산적 대출은 활성화되지 않는 ‘이중고’에 빠질 수도 있다.

과거에도 우리는 여러 번 ‘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실행력 부족과 설계 미비로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될지, 아니면 ‘진짜 변화’의 시작점이 될지는 결국 정부의 뒷심에 달려 있다.

당뇨병을 관리하려면 약만으론 부족하다. 식단부터 생활습관까지,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한다. 가계부채라는 우리 경제의 고질병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적 처방이나 구호로는 의미가 없다. 근본 구조를 고치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방향을 정했으면 실행으로 답해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