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입주자대표 비방 현수막 아파트 설치…대법 “명예훼손 아냐”

‘부끄럽다’는 취지로 아파트 운영비 횡령 문제가 제기된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을 비방하는 현수막 등을 설치했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부산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을 열고,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피고인 A 씨는 아파트 각 동 로비에 모니터를 설치해 “미쳤구나. 입주자 대표 회장…”, “김OO 회장… 당신에겐 회장이란 말 쓰기도 부끄럽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해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을 모욕한 혐의도 적용됐다.

해당 아파트 감사를 맡은 A 씨는 2020년 3월 28일부터 4월 25일까지 입주자 대표회의 회계 및 관리 등에 관한 감사를 실시한 뒤 회장이 운영비를 불법‧부당하게 지출했다는 내용의 감사보고서를 게시했다. 이후 A 씨는 회장 해임을 요청하는 한편 업무상 횡령으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은 2022년 8월 부산지법으로부터 입주자 대표회의 운영비 등을 횡령했다는 범죄 사실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받아 확정됐다.

1심 법원은 A 씨에게 제기된 ‘명예훼손‧모욕 혐의’ 유죄를 인정했다. 2심 또한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하급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입주자 대표회의 운영비를 임의로 사용한 피해자가 회장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부당하고, 피해자의 자진 사퇴를 통해 입주자 대표회의 정상화를 도모해 입주민 공동의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피해 회복을 위한 정당한 조치를 취한다는 이유로 현수막 등 설치한 것으로 보이므로 그 주된 의도와 목적 측면에서 공익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쳤구나’와 ‘당신에게 회장이란 말 쓰기도 부끄럽습니다’라는 표현은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례한 표현에 해당할 뿐 피해자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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